광주시 친일잔재 조사용역 최종 보고
친일인물 단죄비·근대 시설 등
‘다크투어’ 활용 제안
“친일파 작곡 교가·
친일 기념하는 이름 등은 폐기를”

▲ 광주공원 사적비 군에 세워져있는 친일파 윤웅렬 선정비(맨 왼쪽).<광주드림 자료사진>
광주공원 사적비군 내 친일인물의 선정비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광주시가 지역 내 친일잔재 조사를 벌인 결과 셀 수 없이 많은 친일 흔적이 확인됐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앞으로 과제인데 해당 조사를 맡은 연구팀은 친일파의 이름을 딴 이름이나 호, 지명, 친일파 작곡 교가 등은 폐기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친일파 선정비, 식민잔재로 볼 수 있는 시설들은 친일행적을 알리는 단죄비나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역사교육 및 ‘다크투어’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광주시는 9일 시청 1층 행복회의실에서 친일잔재 TF팀원 등 3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 친일잔재 조사 결과와 활용방안을 제시하는 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광주시에 소재한 친일 잔재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향후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이번 용역은 광주교육대학교 산학협력단(대표 홍기대)이 맡아 지난해 7월부터 광주·전남 출신 친일인사에 대한 관련 행적과 잔재물, 군사·통치·산업 시설 등 식민지 잔재 시설물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편찬)’에 수록된 광주·전남 출신 친일인사는 156명(지역 출생·출신 포함)으로 확인됐다.

친일인물을 분야별로 보면 경찰분야는 전남경찰부 청장을 지낸 6명, 광주동부경찰서(옛 광주경찰서) 서장 3명 등 11명, 사법분야는 광주고등법원장 1명, 광주지방법원장 1명 등 6명으로 확인됐다.

관료분야는 전남도 관찰사 8명, 전남도지사 5명, 광주군수 2명 등 15명, 교육분야는 전남도 교육감 1명, 전남대 총장 등 4명, 경제분야는 1명이었다.

음악은 광주지역 내 교가의 작사·작곡가 중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홍렬 등 4명의 이름이 확인됐다.

친일 인물과 관련한 잔재물은 우선 광주공원 사적비군에 있는 친일인물 선정비가 대표적이다.

전남도 제1·4대 관찰사를 지낸 운융렬 선정비, 전남 5대 관찰사 출신 이근호 선정비, 광주군수를 지낸 홍난유 구폐선정비 등 3개가 확인됐다.

광주항교 비각중건비는 일제시대 친일어용단체에 대한 유림의 지지를 조장한 친일인물 박봉주가 지은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원효사 부도전 송화식 부도비·부도탑, 양파정과 습향각 현판 역시 친일인물과 관련한 유산이었다.

전남대학교, 숭일중·고, 호남대학교, 서영대학교 및 서영중·고, 금호중앙중·여고, 대동고, 동신중·고, 광덕중·고, 광주제일고 등은 친일파가 작곡한 교가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

9일 광주시청 1층에서 열린 광주 친일잔재 조사 용역 최종보고회.

식민잔재 군사시설은 동굴과 탄약고 등 사월산 지하시설,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주변 지하시설, 양림동 지하시설, 남광주 지하시설 등 총 4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활용되고 있는 곳도 있었다.

광산구 송정공원의 금선사는 일제강점기 조선 내 건립된 송정신사로 목조로 지어진 신사 건물 중 유일하게 한국 내에 현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송정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옛 송정신사의 참계로 추정되고 송정도서관 주차장에 있는 ‘나무아비타불’ 탑은 일제 당시 송정동초등학교를 다녔던 조모 씨의 증언을 통해 신사참배 장소였고, 탑의 이름도 ‘황국식민서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사적지로 현재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옛 전남도청, 광주지방법원, 광주형무소 등도 대표적인 식민 통치시설의 잔재다. 또 현재 광산구청이 있는 자리에는 수탈의 핵심 기지였던 동양척식회사가 있었다.

전남도시제사, ‘가네보 방적’,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은 일제강점기 동안 광주지역에 만들어진 산업시설 및 수탈시설로 분류된다. ‘가네보 방적’은 강제동원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전남제사.<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연구팀은 이러한 친일잔재들의 활용방안으로 크게 폐기와 보존을 제시했다.

조선총독부, ‘전두환 민박기념비’, 중외공원 안용백 흉상, 서구 화정동 ‘백일’ 지명 등은 대표적인 폐기사례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목포지점, 광양시 친일파 ‘이근호 창덕 애민비’, 전주시 친일파 ‘이두황 묘비’ 등은 보존 사례다.

연구팀은 우선 광주공원 친일파 선정비와 광주향교 비각, 원효사 비석, 정자 현판 등은 “없애는 것보단 올바른 역사 사실을 함께 기술해 교훈으로 삼도록 하고 친일인물의 치부가 공개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광주공원 광주신사 계단에는 옛 광주신사 사진이 찍힌 자료 등을 활용해 안내판을 설치할 것도 주장했다.

다만, 송정공원 금선사는 사유재산이고 종교시설물이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소유자와 협의해 현재 대웅전으로 사용되는 옛 송정신사 배전 건물 등을 역사 교육장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며 “전국적으로 목조 일본 신사 건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주 좋은 역사교육 교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화정 4동에 위치한 옛 저장창고. 70~80m의 긴 동굴로 구성된 이곳은 일제 강점기 인근 치평동 비행장의 연료를 저장하던 장소였다.<광주드림 자료사진>

일제 군국주의를 추앙하기 위해 만들어진 송정공원 ‘나무아미타불탑’은 철거를 제안했다.

또 친일인물이 작곡한 교가는 변경을 유도하고 각급 기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친일인물(역대 단체장 등)은 친일행적을 함께 소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극적 사건이나 재난을 활용한 이른바 ‘다크투어리즘’ 측면에서 임동 방직공장은 ‘광주 근대 산업박물관(가칭)’으로 조성하고, 양림동 방공호는 일제 강제노역과 전쟁 공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 활용하는 안도 제시했다.

또 사월산 벙커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양림동 일대, 임동 방직공장을 잇는 ‘광주 근대 역사투어’ 코스를 개발, 일제의 노동력 착취와 반인권적 행태를 고발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번 용역 결과를 토대로 광주 친일잔재 TF팀의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올해 상반기 중 친일잔재 청산 및 활용방안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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