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소재 ‘대화합’ 메시지 공허
지역감정 부각 김대중·박정희 ‘악수’란 무리수

▲ 연극 달빛결혼식. 광주시립극단 제공
 지난 4월26일부터 28일까지 광주시립극단은 제 13회 정기공연을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올렸다. ‘달빛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이 연극을 나는 27일 토요일에 보러 갔다. 광주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시립극단이 올리는 연극이라 기대가 되었고, 얼른 뜻을 헤아리기 힘든 ‘달빛 결혼식’이라는 제목도 기대를 부추겼다.

 ‘달빛 결혼식’이라는 연극의 큰 축 두 개는 ‘5·18 민주화운동’과 ‘(영호남의) 지역감정’이었다. 5월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문제는 ‘지역감정’이었다. 지금이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논할 시기인가? 물론 해묵은 이 감정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 간의 오래된 감정이 한창 문제가 되었던 시대에서 지금은 한 발짝 비켜서 있다는 점에도 많은 사람이 동의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 연극은 대체 왜, 무슨 의도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들고 나왔을까?

 ‘달빛 결혼식’이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바로 제목과 관련돼 있다. 호남의 청년과 영남의 처녀가 서로 사랑해 결혼하고 싶어 하는데, 지역이 문제가 돼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해 삶을 마감한다. 사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남자 쪽이다. 자동차 사고로 짐작되는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영남처녀가 뱉는 대사를 보면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살인이다.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권리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 독재자·민주투사 맥락없는 ‘화해’
 
 ‘달빛 결혼식’을 만든 사람(나상만 작, 연출)은 이 연극의 형식을 브레히트의 ‘서사극’으로 잡은 것 같다. 브레히트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데, 그의 ‘서사극 이론’에서 파생된 ‘소격 효과’는 현대 연극과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사극’은 종래의 ‘카타르시스’이론과 달리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치들을 삽입해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즉, ‘나는 지금 연극을 보고 있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가짜(imitation)이며 허구(mimesis)라는 것을 매순간 생각하면서 관객은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무대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격 효과는 관객에게 비판적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브레히트는 인간을 무지몽매하게 만드는 패러다임 혹은 이데로기를 관객들이 비판하기를 바랐다. 이 연극의 예술 감독이기도 한 나상만은 관객이 무엇을 비판하길 바랐던 것일까?

 연극 초반, 두 사람의 중요한 인물을 소개한다고 하면서 연극은 김대중과 박정희를 불러낸다. 두 인물은 객석으로 걸어 나와서 김대중은 왼쪽 객석의 한 자리에, 박정희는 오른쪽 객석의 한 자리에 앉는다. 나는 공교롭게도 김대중씨 옆자리였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그것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독재와 싸우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존경할 만한 인물이 비록 배우가 분장을 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내 옆자리에 앉으니 조금은 설레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우리 김대중씨는 살면서 너무 힘들었는지 객석에 한 번 앉은 뒤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그는(그 배우는) 앉아있기만 했다. 그것은 박정희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연극 달빛결혼식. 광주시립극단 제공

 연극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두 사람은 객석을 떠나 무대로 다시 가게 되는데, 악수한다.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사형을 구형받았던 전두환과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노태우에게 사면복권이 떨어졌을 때보다 더 놀랐다. 독재자와 민주투사가 악수하면 화해가 되는 것인가? 독재와 민주주의가 서로 화해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총 11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었고, 그 에피소드들의 연관관계가 명확치 않아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연극을 따라가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에서 충격이 오니 멍하기만 했다. 이 연극의 주제는 그러니까 ‘대화합’인가?
 
 ▲광주시립극단 ‘이름값’을 묻다
 
 연극 ‘달빛 결혼식’에서 ‘달’은 ‘달구벌(대구)’의 준말이고, ‘빛’은 ‘빛고을(광주)’의 준말이어서 ‘달빛’은 대구와 광주를 상징하는 합성어라는 것이 시립극단 측의 설명이다.(월간 ‘한국연극’ 4월호에 작가이자 연출가인 나상만이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7년에 나상만이 만든 ‘우덜은 하난기라’라는 작품이 이 연극의 원작이라고 한다.

1987년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 상황에서는 영호남이 지역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화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극이 있을 수 있다. 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주인공 호남청년이 5·18에서 부상을 당한 것으로 각색해서 2019년에 1987년의 극본을 올린다는 발상은 대체 누가 한 것일까?
연극 달빛결혼식. 광주시립극단 제공

 이 연극을 만든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대화합이 필요하고, 그 화합에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아직도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서사극 형식의 이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소격 효과 속에서 관객들은 뭘 비판했을까? 영호남에 지역감정을 유발시킨 정치가들이었을까? 무대에 인형으로 등장했던 김유신, 왕건, 박정희 같은 정치가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 도대체 무대에서 배우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따라잡기 힘든 연극을 보면서 오히려 이 연극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을까? 2019년에도 지역감정 운운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한낱 지역감정에 의해 희생된 두 청년의 영혼결혼식에나 써먹는 이 연극의 어처구니없음을 말이다. 지역감정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이 순간에 지역감정을 강조하는 이 연극의 이해할 길 없는 ‘이데올로기’를 말이다.

 이 연극의 어처구니없는 다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지면관계로 생략한다. 광주를 대표하는 시립극단이 다음번에는 제대로 된 연극을 올리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공연 후에 몇 명의 관객을 인터뷰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 연극이 (필시 광주시민의 세금일) 돈 낭비이며, 자신의 귀중한 시간 낭비였다고 일갈했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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