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든든한 뒷배, 광주의 ‘공변’들
장애인·성매매 피해·난민·이주여성 등
보수 없이 공익소송·법률 지원 활동

▲ 지난 14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사무실에서 만난 김민아·권소연 상근변호사(왼쪽부터).
 “인권을 지키는 든든한 뒷 ‘빽’이 되고 싶어요.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광주에 ‘동행’이 있었지 떠오를 수 있는.”

 약자라는 이유로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당한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 높고 멀게만 느껴졌던 법의 시선을 약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가 이 세상에 충분히, 잘 들릴 수 있도록 ‘확성기’가 되어 주는 변호사들이 있다.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이다.

 ‘동행’은 공익변호사가 상근하는 광주의 유일한 비영리단체다.

 서울 등에서 공익변호사 경험을 쌓은 이소아 변호사가 지난 2014년 광주에 와 다른 법률사무소 공간을 빌려 1인 단체로 출발한 것을 계기로 2015년 설립한 게 ‘동행’이다.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 언어로 세상에 전달한다.”
 
▲지적장애인 ‘성본’ 노예처럼 착취

 지난 14일 ‘동행(동구 제일오피스텔 302호)’ 사무실에서 만난 권소연 상근변호사는 ‘동행’ 비전을 이같이 말했다.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의 ‘일상언어’를 법의 요건, 형식에 맞춰 중요한 사실과 의미를 짚어 잘 전달한다는 의미다.

 ‘동행’은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차별 받거나 여전히 인권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소송이나 법률 지원, 법률연대, 인권관련 제도 개선 활동 등 다양한 일들을 진행해 왔다.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소송에 나서고, 신안 염전에서 노동력을 착취 당한 장애인,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 등.

 여성, 아동,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성매매 피해자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곁에 ‘동행’이 있었다.

 권소연 변호사는 “제일 많이 접하는 사건이 장애인 노동 착취와 성매매 피해 여성 문제다”고 밝혔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경우 업주들이 선불금을 이유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례가 많다. “선불금 ‘차용증’을 아무 것도 모르고 싸인해주면 업주들이 소멸시효가 끝나기 전에 재판을 걸어요. 피해자들이 (성매매 업소를)나와 제대로 삶을 영위하려고 하면, 그걸(차용증)로 괴롭히고 다시 성매매로 끌어들이는 것이죠. 이런 사건의 경우 ‘피고’로 들어가 성매매 알선법상 무효임을 따지거나 원고로 들어가 채무 부존재로 소송을 하기도 해요.”

 지적장애인을 데려다 ‘성본’을 창설(새로 성과 이름을 만들어버림)해 17년간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건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원래 이름으로 실종 신고를 하고 20년이나 찾아다녔지만 업주에 의해 이름이 바뀌어 가족들이 미처 찾을 수 없었던 사건이다.

 출생 신고가 안 되는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이나 모든 것을 잃고 살기 위해 한국을 찾은 난민들의 곁을 지켜주기도 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소송에 나선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제공>
 
▲소송외 가종 법률 상담·교육도
 
 난민 관련 소송은 ‘불인정’ 결정에 대해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이 많다. 현행법상 난민 인정을 위해선 ‘본국에 돌아갔을 경우 박해 받을 우려’를 입증해야 하는데, 권 변호사는 “이게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박해를 받아서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하면 이와 관련한 자료를 들고 가진 않잖아요. 그러기도 힘들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하면 그런 걸 다 입증하길 요구하니까….”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 ‘동행’은 전쟁이나 독립운동, 종교적 이유가 아닌 매매혼이나 여성차별 역시 ‘박해사유’가 될 수 있음을 호소하고 난민 인정의 길이 넓어져야 함을 주장해 오고 있다.

 그동안 성과도 적지 않았다.

 뇌전증(흔히 간질)으로 뇌병변장애 2급이었다가 2016년 뇌병변장애 3급으로 등급이 변경돼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피해자와 함께 소송에 나서 변경처분 집행 정지 및 장애연금 지급 처분을 받아냈고,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신청 자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기도 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70일간 죽음을 목격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은 진도 경찰이 공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임을 인정 받고, 통일캠프 참가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를 받아낸 것 역시 ‘동행’의 역할이었다.
 
▲“변호사들이 계서 든든하다…”
 
 광주전남이주노동인권네트워크 발족 지원, 광주지방변호사회 다문화 가족 법률지원단을 통한 이주민 법률 상담, 통역인 법률용어교육 등도 진행해 오고 있다.

 최근 늘어난 공익변호사와 관련한 현황조사연구도 수행했다.

 “공익변호사가 100명이 넘어가는데, 형태가 굉장히 다양해요.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고, 급여수준은 어떤지, 어떤 분야에 집중해 사건을 수행하는지 법적공익모임 ‘나우’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조사를 하게 됐어요.”

 이 조사 결과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공익변호사의 현황과 전망’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손을 잡고 일제 강제동원 추가 집단소송 대리인단으로도 참여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법, 반올림, 동천 등 서울·경기 등을 중심으로 공익변호사 모임, NGO가 늘어나고 있지만 ‘동행’이 생겨나기 전까지 광주에는 공익 ‘전업’ 변호사가 전무했다.

 어려운 문제에 처한 이들의 문제를 법의 영역에 풀어야 할 때 피해 당사자나 이들을 돕는 지원단체들의 입장에선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을 얻고 싶어도 손 내밀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동행’의 등장은 이러한 갈증과 고민을 해소해준 것이기도 했다. 법의 문턱을 낮추고, 두렵기만 했던 법으로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동지’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제1회 광주 퀴어 문화축제에서 `동행’은 인권침해 감시단을 운영했다.<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제공>

 지난해 열린 제1회 광주 퀴어 문화축제에서 ‘동행’이 인권침해 감시단을 꾸려 활동했을 때다. “축제가 끝나고 활동가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변호사들이 계셔서 든든하다’. 이때 저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구나라는 걸 느꼈죠.”

 ‘동행’ 역시 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기관들과의 네트워크를 중요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을 돕는 단체나 기관을 통해 ‘동행’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는 “시민사회단체, 지역 법조계와의 연대와 협력이 ‘동행’의 역할을 넓히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4년 만에 처음 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연대 단체들과 그동안의 시간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동행변론 낭독회’를 마련해 각 단체 활동가들이 관련 사건 의견서나 청구서, 변론 등을 낭독하고 소회를 나눈 것.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비전은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 언어로 세상에 전달한다”는 것이다.<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제공>
 
▲시민후원 절실 “동행과 함께 걸어주세요”
 
 올해로 만 4년차를 맞은 ‘동행’의 가장 큰 고민은 자립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동행’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소송이나 법률 지원에 있어 수임료 등 일체의 보수도 받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다.

 오로지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상근변호사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나마 이소아 변호사와 권소연 변호사, 김민아 변호사 등 상근변호사가 3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그 많은 사건과 소송을 다 맡기엔 업무 부담이 큰 상황이다.

 사무실 공간도 이곳 저곳을 돌다 은행에 빚을 얻어 현재 위치로 옮긴 상태다.

 어려운 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동행’이 더 활발히 지역을 누비기 위해선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만 4년이 된 ‘동행’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커나가야 하고 할 일도 많고. 지역의 유일한 ‘공변’이란 무게감이 있지만 한편으론 ‘동행’이 약자들의 든든한 뒷 배라는 생각으로 활동해 나가려 합니다.”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전화: 062-351-0518
후원: 신한은행 100-032-029907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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