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앞두고 떠나지 못한 30여 세대
“김영철·윤상원 기억하는 이들 많아”

▲ 광천시민아파트 B동 뒤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1970년 당시 B동에 윤상원 열사가 살았다.
 “영철이 잘 알지. 아래층에 살았는데 같이 마을활동도 하고 그랬어. 윤상원 열사도 그렇고.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기억하는 사람들 많제.”

 광주 최초의 아파트에 건설 당시부터 입주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는 주민들은 1980년 전후 들불야학과 당시의 마을활동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재개발로 철거될 예정인 광주 서구 광천시민아파트에는 아직 30여 세대가 떠나지 않고 거주하고 있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자 집값이 훌쩍 뛰었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높아진 가격으로 집을 팔고 새 집을 찾아 나가는 사이 오갈 곳이 없는 주민들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18일 찾은 광천시민아파트에서 만난 서영두(67) 씨는 “재개발 확정되고는 집값이 3~4배가 뛰었어. 그리고는 부동산중개사들이 들어오고 많은 시민들이 이사를 갔지”라며 “갈 사람은 가고…남아있는 사람들은 딱히 갈 데도 없고, 여기서만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영철 열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마을활동과 함께 들불야학 활동 등을 기억했다.

 그는 “(김영철 열사가) 참 열심히 활동했어…그래서 우리들도 같이 활동했지. 협동조합, 청년회 같은 활동”이라며 “B동 주민들은 윤상원 열사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광천시민아파트 내부 복도.|||||

 다른 주민 A씨는 공동 화장실, 세면장, 취사실 등을 보며 “보시다시피 사람 살 만한 곳은 못돼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떠나간 거죠”라면서 “다만 이 곳은 주민들의 추억이 있는 곳이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적지인데, 2~3세대를 합치고 리모델링한다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공간일텐데 아쉽긴 해요”라고 말했다.

 주민 B씨는 “빈민들 살던 판잣촌이 있었고, 노동자들 살던 광천시민아파트가 있었다. 한때 마을활동이다 뭐다 활기찬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되게 사는 노동자들이 그것을 이어갈 수 있었겠느냐”면서 “주민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마저 점점 없어졌다. 지금은 노인들만 있으니까 동력이 없다”고 말했다.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광주 최초의 아파트는 재개발과 함께 사라진다.

 이와 함께 그때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도 뿔뿔히 흩어지게 될 예정이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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