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인성

▲ 젊은 작가 이인성. 그의 그림은 기괴하다. 작가의 뒤로 보이는 기괴한 아이의 모습. 작가를 둘러싼 현실의 반영일 수 있겠다.

 오후 5시 이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인성 작가를 만나려면 5시 이후라야 했다. 현재 대학원에서 미술학과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 조교 일을 한다고 했다. 아마 5시 이후면 미술대학 건물 지하에 있는 작업실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너른 캠퍼스를 부지런히 뛰어오는 작가를 상상하며 누구에게나 삶이란 참 만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스칠 때 즈음 캔커피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공기는 쌀쌀했고 남자의 뺨은 발그레했다. 한눈에 봐도 ‘젊은’ 작가….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작가처럼 ‘젊은’이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바쁜 움직임, 피로감이 밴 듯한 얼굴, 그러면서도 숨겨지지 않는 ‘홍조’ 같은 것들이 젊은 그들 속에 흘러다니는 것도 같았다.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러 가는 것 같았고 누군가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모든 발길에는 어김없이 지는 햇살이 얹혀 있었다. 젊은 그들이 그 햇살에 아는 척을 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그런 와중에 작가는 밝게 인사하며 캔커피를 건넸고 기자는 이제 막 퇴근한 작가에게 “배고프지 않느냐?”는 걱정을 건넸다. 긴장과 서정, 생활과 저녁 햇살 같은 것들이 얽히고 설킨 캠퍼스에서의 만남다웠다.











 ▲`아지트-B’

 

 그림일기 같은 일상의 기록

 작업실이 넓다. 캔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작가의 뒤로 배경처럼 아기의 그림이 자리잡았다. 해맑고 귀여워야 할 갓난 아이의 얼굴이 기괴하다. 무언가를 잡고 싶은 듯 허공에 허우적대는 두 손. ‘순수’의 표상인 아이의 얼굴을 기괴하게 그린 작가의 표정이 더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다. 앞에 앉은 작가는 친절한데 그림은 친절하지 않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기괴하고 차갑다.

 작업실은 학생들 여럿이 나눠쓰고 있다. 그래서 놓여진 그림들의 풍이 각각 다르다.

 일단 보기 좋은 그림은 그의 그림이 아니다. 쉽게 구별된다. 그의 그림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등장하거나 형체가 일그러진 남자들이 주로 등장한다. 얼굴빛은 잿빛이거나 보라빛이거나 흙빛이며 표정마저 없다. 아니 형체마저 없기 십상이다. ‘나무심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그림 속 남자들 역시 나무를 심고 있음에도 시체를 파묻는 듯 보인다.

 “제 그림이 무섭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하며 웃는 작가.

 “그저 그림일기 처럼 저의 일상이 그림으로 표현된다고 보시면 돼요.”

 일상이 그림으로? 작가가 살고 있는 일상이란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일상을 다루기가 쉽잖아요.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다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어요. 제가 그린 그림은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이거나 철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예요. 그림일기처럼 내가 느낀 나와 주변의 이야기죠.”

 작가는 지난 여름 첫번째 개인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졸업전의 주제를 ‘혼란속 일상’으로 잡았다. 일상은 혼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전시 했던 ‘혼란속 일상’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예쁘지는 않잖아요.”

 예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우리는 평소 의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가 작가의 그림과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거나 혹은 끌리거나… 둘 중의 하나다.

 

 작가가 사는 시대 혹은 우리 시대

 내친 김에 한번 마주해 보자.

 사람들은 분노를 품고 산다. 이 분노는 적당한 상대를 만나면 거침없이 분출한다. 운전을 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배설하듯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분노의 출처를 향해 거슬러 오르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아마도 경쟁, 위기의식, 불안, 피해의식?

 그는 그가 느끼는 혼란을 “일종의 과부하 상태”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대문도 안 잠그고 사는 시골에서 살아서 그럴 수도 있죠. 그 때는 모든 것이 느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 빨라졌어요. 무엇이든 빨리 해결하고 빨리 도달하도록 요구하고, 너무 많은 소식들로 인해 마음만 급해지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지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목적지도 없이 떠밀려 앞으로만 달리는 상황에서 많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의 그림은 정글같은 혼란을 피해 아지트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아지트도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지트’라는 그림 속에도 역시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하나도 아닌 두명의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둠 컴컴한 방에 혼자 티비를 보아도 욕망과 불안은 뒤범벅 된다. 휴식을 취하는 여자의 눈빛은 서늘하다. 모두 그의 그림속 이야기다.











 ▲`나무 심는 사람들’

 

 20대 예술가의 불안과 열정

 “저의 일상은 단순해요. 일어나면 출근하고, 또 퇴근하면 작업을 하거나 대학원 공부를 해요.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면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죠. 아직은 여건이 그러하니까….”

 자유로울 것 같은 20대 젊은 예술가의 생활도 녹록지 않다. 하루 하루가 꽉 짜여졌다. 그럼에도 표정은 차분하다. 적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안정감일까.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이제 어른이 돼 그림을 그린다.

 “중학교 때 예술고등학교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시험을 보러 광주에 갔어요. 잘 모르지만 떨어지고 나니까 서운하더라구요. 본격적으로 미술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미술부에 들어갔어요.”

 해남이 고향이었던 그는 해남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해남에는 미술 입시전문학원이 없었다. 미술부 선배들이 ‘엄하게’ 후배들을 가르쳤다.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할 때가 되니 더욱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사회로 나갔다. 그도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재밌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 그게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10년을 같은 캠퍼스에 있었다.

 “20대는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고 봐요. 좀더 과감하게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선 제 작업의 내용을 정리하고, 작가 지원프로그램 등에 지원을 해보기도 해야죠. 컴퓨터 그래픽 공부를 좀 하고 싶고, 외국어 공부도 좀 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보는 사람에게 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불안과 열정은 교차한다.

 “문득 문득 주변 속도에 휩쓸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또한 큽니다. 미술계의 흐름이 너무 빠르고 화려해지는 것도 그렇구요. 큰 아트페어를 가보면 단순한 개인의 작업치고는 고가의 재료와 인력을 사용한 작품들에 밀려 기가 죽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불안과 혼란은 늘 주위를 맴돌겠지만 작가에게는 그리 문제 될 것 없어보인다. “혼란한 틈에서도 아예 안보이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그 혼란들을 재밌게 주시하고 있다”는 작가는 단단해 보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지만 ‘인식된’ 불안은 영혼을 깨울지도 모른다.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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