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처럼 굳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



 사춘기! 아지랑이가 한 세미 들판에 피어오르면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에 상훈이가 사는 벽골로 발길을 옮긴다. 상훈이 집 대문은 싸리를 엮어 만들었다. 싸리를 엮어 만든 대문은 그의 할아버지가 대초리 산에서 베어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무척 포근하고 정겨웠다. 상훈이는 그날도 예외 없이 기타로 벤처스 악단의 `파이프라인’을 연주하고 있었다. 가슴이 설렌다. 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 딩딩딩딩 쟝~쟝~ 한참을 밖에서 그의 기타연주를 감상하다가 싸리대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지나 대나무를 쪼개 만든 쪽방문을 열었다. 친구는 예고없이 찾아온 나를 기타를 치다말고 멀그머니 쳐다보며 “잡놈이구나. 어서 들어 와라” 손짓한다. 그의 말투는 언제나 아무런 느낌도 없고 따사로운 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속마음은 누구보다 더 나를 반긴다는 것을 알기에 그닥 표정이 싫지 않았다.

 상훈이는 다시 기타를 안고 연주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기타 맨’이다. 손가락에서 퉁겨져 나오는 소리는 나른한 봄날을 몽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 시절! 토끼하고 잠자는 깡촌 시골에서 상훈이는 영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시골에서는 기타를 친다는 자들의 수준이 고작 `비 내리는 호남선’ 아니면 `애수의 소야곡’이었다. 하지만 그런 곡들만 연주해도 그 고을에서는 인기가 좋아 뭇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상훈이는 벤처스의 `기타맨’ `파이프라인’ `상하이 트위스트’ `울리 불리’ 등을 자유자재로 연주했으니 그 인기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높았다. 도암을 비롯한 능주 고을에 사는 처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훈이하고 연애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상훈이 집은 저녁이 되기가 무섭게 연주를 듣기위해 몰려든 사춘기 처녀들로 가득찼다. 나는 늘 상훈이의 인기를 배경으로 가만히 `꼽사리’를 끼었다.

 상훈이네 집은 아주 가난했다. 아버지는 교사였는데, 6·25 때 `반동’이라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죽었다. 그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서 잘 모른다. 엄마는 어찌 되었느냐는 사연을 캐물으면 그들의 상처를 덧나게 할까봐 묻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와 명숙이 누나 그리고 상훈이 셋이서 남의 논밭뙈기를 빌려서 벌어먹고 살았다. 그러나 악질 같은 지주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고 착취를 했다. 그러니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이들에게 속수를 주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 없으니 봄이 되면 식량이 떨어져 세 식구는 늘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상훈이는 늘 말이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흘금흘금 눈치를 보고, 늘 자신이 없어했다.

 안방에서 내가 온 줄도 모르는 명숙이 누나는 “야! 너 기타만 치냐 어서 가서 나무해 와야. 나무가 없어 밥도 못해 먹겠다. 저 등신을 어디다 쓸까이” 한다. 명숙이 누나의 목소리는 늘 쇳소리가 났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소녀 가장이 되어버린 누나는 힘든 삶에 발버둥치는 몸부림이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알았어”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기타를 친다. “저런 오사 헐 놈 보소. 나무가 떨어졌다고 해도 기타만 치고 있네이. 그래 기타가 법 먹여 준다디. 저놈의 기타를 콱 뿌수가 부려야 쓰것네.” 누나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이번에는 뽕짝이다. 섬마을 선생을 레코드판과 똑같이 연주한다. 띵~딩 디디딩 디디디딩 디디딩 나는 그의 반주에 노래를 부른다. 봄날 햇살은 작은 문을 통해 가늘게 우리들을 비췄다. 마치 화려한 무대에서 비추는 조명같았다. 속아지 없던 우리는 명숙이 누나의 듣기 싫은 잔소리도 기타 속에 묻어버리고 마냥 행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쑥 냄새나는 풋풋한 봄날을, 아지랑이 들판에 피어오르는 봄날을, 가슴 설레는 사춘기를 기타와 함께 노래했다.

 <※상훈이와의 우정으로 살아온 이야기는 다음주에 계속된다.>

 민판기<(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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