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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영 영화읽기]‘침묵’
장르 비틀기로 ‘서프라이즈’
조대영
기사 게재일 : 2017-11-10 06:05:01
 관객들은 특정 장르의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 어렴풋이 그 영화의 서사를 예측하게 된다. 관객들은 그동안 본인들이 보아왔던 영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선택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장르는 예측 가능한 결과에 이르는 전체적인 구조를 말한다.

 관객이 장르 영화를 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르 영화는 관객들과의 밀고 당기기에서 이를 만족시켜주거나 배반하면서 관객들을 영화의 엔딩까지 끌고 가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르영화의 장점이다.

 그러나 장르의 관습을 단순하게 반복하면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인 영화가 되기 싶다. 빤한 영화를 좋아할 관객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의적인 감독들은 기존 장르영화의 관습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장르의 관습을 멋지게 비틀어내기도 한다. 정지우 감독의 신작인 ‘침묵’역시 그러하다.

 ‘침묵’은 법정스릴러 장르를 표방한다. 태산그룹의 최고경영자인 임태산(최민식)은 연예계 톱스타인 박유나(이하늬)와 사랑하는 사이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면, 임태산의 딸인 임미라(이수경)가 새엄마가 될 박유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박유나는 전화를 받고 임미라를 만나러가서 죽임을 당한다. 이때 만취 상태인 임미라가 박유나를 살해한 것으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는데, 임미라는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임미라는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고, 임태산은 딸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제 관객들의 관심은 온통 박유나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것에 모아진다. 영화 역시 이러한 관객들의 기대를 알고 있기에 미스터리구조를 유지하면서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렇게 법정 다툼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기 위해 몇 차례 소란스러움이 진행된다. 그리고 결국 예상 가능한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게 된다.

 만약, 이 지점에서 상황이 종료되었다면, 이 영화는 삼류 법정드라마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침묵’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박유나를 죽인 범인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침묵’은 장르 영화의 관습으로 관객들을 유인하여 감독이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우 감독은 ‘침묵’을 통해 태산같이 듬직한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임태산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표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가서 목격되는 그는 속 깊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임태산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자,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이자.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따뜻한 아빠로서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관철시키는 인간을 이 영화는 강조한다.

 그러나 임태산은 다수의 관객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인물이 될 수는 없다. 그의 ‘선택’이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현실 속 인물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임태산은 영화적인 인물인 것이다.

 ‘침묵’은 동시대의 한국영화들이 속도와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완만한 호흡으로 차곡차곡 정서를 쌓아가면서, 결국 영화의 엔딩에서 임태산의 선택에 묵직한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그러나 ‘침묵’은 장르 비틀기로 서프라이즈 효과는 거두고 있지만, 임태산을 땅에 발 딛고 있는 ‘인간’으로까지는 공감시키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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