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 잔치 모습. 옛 사람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바윗돌을 한번 옮겨 봤다. 보통 어른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를 50킬로그램이라 한다면, 10톤 정도 되는 바위를 끄려면 적어도 200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통나무를 깔고 옮기면 그냥 땅바닥에 놓고 당길 때보다 힘이 훨씬 덜 든다. 그래서 한 100명 남짓이면 끌 수 있다. 하지만 재현 행사를 지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끌어도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고, 또 옮긴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태평양 동쪽 끝 이스터 섬 모아이처럼 큰 돌로 지은 모든 것을 통틀어 ‘거석(巨石) 유물’이라 한다. 고인돌 또한 ‘큰 돌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유물 조사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의 거석 유물이 5만 5000기(基)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고인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돌무덤이 많다고 하는 아일랜드에 1500기,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에 2400기밖에 없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4만(북한에 1만5000) 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있다. 이 가운데 전남 지방에만 2만 기가 있다. 물론 아일랜드나 러시아 말고 다른 나라에도 고인돌은 있다. 중국 요령 지방에 316기, 일본 큐슈 지방에 600기, 인도네시아에 600기쯤 있지만 한반도에 견주면 그 수가 아주 적다. 더구나 한반도처럼 작은 면적에 수많은 고인돌이 한곳에 몰려 있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세계 고고학자들은 우리나라를 ‘고인돌의 나라’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2000년 12월2일, 전남 화순·전북 고창·인천 강화 지역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 제977호로 정한 것이다.

 선사 시대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돌돌림무덤, 널무덤, 독무덤, 옹관묘처럼 갖가지 무덤이 있다. 고인돌은 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언제부터 썼을까.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보통 지금으로부터 한 3000년 전에 아주 유행했던 무덤으로 보고 있다. 물론 고인돌을 무덤으로 보지 않고 제단이나 묘지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기도 한다.

 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다는 ‘자생설’, 벼농사를 많이 짓는 동남아시아에서 바닷길을 타고 중국 동북 바닷가 지방과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는 ‘남방 기원설’,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 카라수크 돌널무덤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고인돌 무덤을 쓰기 시작했다는 ‘북방 기원설’, 이렇게 세 의견이 있다. 학자들은 이 가운데서 북방 기원설을 많이 따르고 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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