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근과 구본관에 따르면 우리말의 문법 범주에는 인도유럽어의 ‘수 범주’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인도유럽어의 ‘수 범주’를 단지 어떤 명사의 수효가 하나인지, 둘 이상인지의 문제로 보는 듯싶다. 고영근과 구본관이 정리한 두 문법서 ‘머리말’만 읽어 보았다. ‘표준 국어문법론’(남기심·고영근) 머리말에는 복수접미사 ‘-들’이 모두 여덟 번 나오는데 이 가운데 한 번(‘저술들’), ‘우리말 문법론’(고영근·구본관) 머리말에는 열일곱 번 나오는데 이 가운데 일곱 번(‘성과들’, ‘주장들’, ‘성과들도’, ‘지은이들은’, ‘업적들을’, ‘잘못들이’, ‘잘못들을’) 쓴 ‘-들’은 ‘수(數) 범주’에 따라 ‘둘’ 이상이면 붙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문법서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문법 범주에는 ‘수 범주’가 없다 하면서도 그들이 쓰는 복수접미사 ‘-들’을 보면 철저히 ‘수(數) 범주’에 따라 붙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본간은, 인도유럽어는 수에 따라 다른 말(동사·대명사·형용사·관사)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지극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인도유럽어에서 ‘수 범주’가 가능하게 된 ‘바탕’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다. 서양의 ‘수 범주’가 단순히 사물의 단·복수 문제라기보다는 사물의 ‘개체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2008년 EBS 다큐 ‘동과 서’는 서양인과 동양인이 세상을 어떻게 달리 보고 있는지 갖가지 사례를 들어 촘촘하게 밝혀낸다. EBS 다큐 ‘동과 서’는 리처드 니스벳의 연구 성과 ‘생각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니스벳은 “이 책에서 동양이라 함은 ‘동아시아’, 즉 중국과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주로 칭한다. 또한 ‘서양인’은 주로 ‘유럽문화권’의 사람들을” 칭한다고 말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