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만나러 갈게, 안녕, 마이 프렌드!”

▲ 우치동물원 시절 수의사와 함께였던 판치.
 침팬지가 운다.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인천공항에서 항공사가 그를 못 싣고 간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마치 늑대처럼 울부짖었다니 이제 믿을 수가 있다.

동물들이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보여 줄 때까지는 우린 그걸 미처 예측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곁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이 수십 년쯤 쌓여야 우린 겨우 몇 가지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 제인 구달 역시 아프리카 곰베의 침팬지 숲에서 매일 그들 곁에서 몇 년을 함께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침팬지의 감정상태가 인간처럼 매우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세상에 발표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돼야 그를 조금 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물원에서 얼마 전에 떠나보낸 침팬지 이름은 ‘판치’였다.

판치는 비록 말도 없고 내성적인 침팬지였지만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여 그의 마니아 친구들이 여럿 생겨났다. 그들은 우리 동물원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침팬지와 교감했다. 진심과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늘 진심에 허점을 보인다. 그들도 우리처럼 진심과 진정에 메말라 있는 것이다.
 
▲떠나기 전 필사적으로 마취 피해
 
 판치가 간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들 중 한분이 편지를 보냈다.

‘판치를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늙고(38세) 스트레스에 약한 판치가 과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겠냐’며 ‘그냥 이대로 살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거의 부탁이었다.

우치동물원 시절 판치.

우린 ‘판치가 영리하고 건강한 만큼 금방 새 환경에 적응할 것이고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우리 동물원 원숭이사의 열악함은 이미 그들도 알기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다.

잘 적응만 한다면 아마도 훨씬 더 자연적이고 편안한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우리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를 위해 과감히 떠나 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정말 좋은 벗을 하나 잃었다.

 판치는 떠나기 전 마취과정을 거쳐야 했다. 쉽게 상자 속에 들어갈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전날 판치를 바깥 방사장에 내놓아야 했다.

처음엔 사육사와 나 둘이서 해보려 했지만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문을 내리리란 걸 이미 알고 안으로 쏙 들어가 절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전혀 모르는 제 삼자를 몰래 잠입시켰다. 그리고 우리 둘이 바깥으로 유인하는 사이 문을 닫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마취타임이 시작되었다. 판치는 일주일 전에 건강 검진 한다고 얼떨결에 마취를 당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 절대로 쉽게 마취를 하게 놔두지 않았다. 계속 도망치고 총을 들고 있는 내게 똥까지 던지려 했다.

결국 나는 마취 총을 쏘려고 울타리에 붙어 계속 시도하고 판치가 나에게 온 정신이 쏠려있는 동안 미끼 역할을 맡은 다른 사육사가 반대편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판치를 쏘았다. 나까지 속인 완벽한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그제야 판치를 이동 상자에 옮길 수 있었다. 아마도 판치의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배신자’ 정도일 것이다. ‘미안하다! 판치야.’ 누군가 부득이 악역을 맡아야 된다면 아마 그가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거야.

 판치는 10년 전 우리 동물원 수컷 판치와 다른 동물원 수컷과 교환한 녀석이다. 원래 이름이 대원이었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침팬지라는 의미였는데 이름이 좀 그래서 기존에 부르던 침팬지 이름으로 다시 바꾼 것이다.

침팬지의 판치도 되지만 워낙 손이 커서 마치 권투 글러브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옴으로서 판치 시즌2가 시작된 것이다.

판치는 우리 동물원에서 사람 빼곤 유일한 영장류 유인원(사람, 보노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이었다. 유인원들은 ‘사람류’라는 말처럼 정말로 사람과 외모와 성격이 흡사하게 닮았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그냥 친구처럼 여겨질 때가 많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친구들을 만나려는 목적만 가지고도 동물원을 찾는다.
 
▲놀리는 애들에게 똥 던지기 “반항”
 
 나 역시 판치와 날마다 눈 맞춤을 하고 대화 아니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도 처음엔 외면 하다가 차츰 친해지고 경계를 풀었다. 그의 집을 찾는 선물로 난 매일 조그마한 먹을 것을 준비해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주식인 사과나 바나나보다 밤과 감 같은 자연산 과일류였고 수확철인 가을이 오면 날마다 그것들을 줍거나 따다 바쳤다. 봄의 매실이나 여름의 산딸나무 열매도 감이나 밤만은 못하지만 그런대로 선물로 받아주었다.

 그의 두툼한 손은 바로 잡기가 힘든 구조라 늘 공중으로 던져주면 떨어지는 걸 받아먹는 식이었다. 그가 사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나 오징어, 핫바 그리고 맥주 같은 정크 푸드였지만 그것들은 약 먹이기 같은 어려운 작업에 가끔 요긴하게 쓰였을 뿐이다.

다른 먹이에 섞어주면 모두 골라버리는데 아이스크림에 가루로 녹여주면 그대로 잘 먹었다. 동물사가 좁고 동료가 없어서 운동 같은 건 잘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않아서 이 사람 저 사람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는 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특히 좋아하는 장난은 앞에서 까불고 놀리는 애들에게 몰래 똥 던지기였다.

수의사와 판치.

그에겐 일종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그래서 옷 세탁비나 목욕 비를 물어준 적도 여러 번 있다. 동물에게 그런 수난을 당하면 기분이 아주 상하진 않는지 더 이상 큰 민원은 제기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가서 야단을 쳐주곤 했지만 오히려 커다란 방귀뀌기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아주 심심하고 배부르면 자기 주위에 마른 음식물로 둥근 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했다. 원이 완벽한 게 거의 측량 수준이었다. 판치는 그런 어린아이 같기도 때론 초인 같기도 한 신비한 원숭이였다.

 판치가 언제나 잘 지낸 건 아니었다. 8년 전쯤 ‘토토’란 암컷 한 마리를 짝을 지어주었다. 둘은 첫날부터 죽고 못 살았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얼마가지 못했다. 새끼를 채가지기도 전에 이듬해 겨울, 약하게 보이던 토토는 그만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차가워진 토토가 유리창 밖으로 들것에 실려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판치는 하염없이 고함을 지르고 유리창을 두드려댔다. 그렇게 그가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걸 그때 처음 보았다.

마치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사내가 절망에 빠져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우린 모두는 숙연해졌다.
 
▲짝의 죽음 앞에서 절규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번에 공항에서 두 번째로 판치가 격한 감정을 노출한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분위기를 알고 슬퍼할 줄 아는 동물이었다. 난 잘 슬퍼할 줄 모른다.

그럴 때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도 조카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도 속은 젖어 가는데 밖으론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절규 같은 건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판치는 기쁨이나 반가움 같은 건 잘 표현 못했지만 슬픔이나 분노는 진정으로 느끼고 몸으로 표출할 줄 아는 참 감성의 소유자였다.

 나도 중국에 있는 그 동물원에 꼭 가보고 싶다. 당연히 판치는 한번 각인된 이를 몇 년이 지나더라도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걸 침팬지를 좀 아는 이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이 사실 그렇다.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들과 남은 생애를 활활 불사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80살 넘어서까지 세상에서 가장 장수한 침팬지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그를 보낸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니까. “꼭 한번 만나러 갈게, 안녕, 마이 베스트 프렌드야!”

 사족=그리고 한 달 후 보내온 동영상 속 판치는 넓은 운동장에서 짝과 함께 신나게 놀고 있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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