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젤위거의 탁월한 메소드 연기

▲ 영화 ‘주디’.
 유명 인물을 다룬 전기 영화를 우리는 종종 만난다. 일일이 거론하기가 벅찰 정도로 부지기수인 이들 영화들은 한 사람의 일생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 인물의 일평생을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다 보여줄 수는 없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47세의 나이로 무지개 너머로 사라진 주디 갈랜드(1922~1969)의 삶을 다룬 ‘주디’ 역시 이 고민을 피해갈 수 없다. 주디 갈랜드는 두 살 때부터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했고, 열여섯에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도로시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194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MGM 뮤지컬의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며, MGM과의 계약해지 이후에도 ‘스타탄생’(1954)으로 재차 주목받았다.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도 카네기홀 단독 콘서트와 같은 라이브 공연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며 영화배우이자 뮤지컬배우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주디 갈랜드의 삶이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아버지의 이른 죽음, 돈과 성공만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가혹한 대우, 다섯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 그리고 자식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과 자살소동에 이르기까지 주디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 했다. 그러니까 주디 갈랜드가 생존했던 47년의 시간을 2시간에 녹여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주디’는, 주디 갈랜드(르네 젤위거)의 마지막 한 해를 집중 조명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주디가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하던 시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주디의 말년의 모습과 어린 시절 제작사로부터 착취당하던 시절을 교차시킨다.

 한데, 영화에서 보여 지는 주디의 말년은 불면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고, 무대를 향한 설렘과 불안의 모습을 동시에 노출하는 등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모습이다. 영화는 주디의 이런 성격 장애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하던 당시를 수시로 호출한다.

 이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들은 주디가 쇼 비지니스 세계에서 혹사당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주디는 장시간 촬영에 지칠 땐 각성제를 먹어야 했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수면제를 섭취해야 했다. 그러니까 충분한 수면과 음식 섭취가 필요한 성장기에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인과 대중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렇듯 주디는 식욕과 수면욕 같은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를 통제 받으며,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를 보냈음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국 주디가 성인이 되어 다섯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을 반복하며 사랑을 찾아 헤맸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엔딩 자막은 의미심장하다. “누굴 얼마나 사랑하는가보단 얼마나 사랑받는지가 더 중요한 거야”라는 ‘오즈의 마법사’의 대사가 영화의 끝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유예되는 삶을 살았던 인간이 주디였음을 이 영화는 강조하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의 삶 이면에 암울한 그림자가 숨겨진 주디의 복잡 미묘한 삶은 르네 젤위거의 탁월한 해석이 있었기에 설득력을 얻었다. 르네 젤위거가 해석한 주디는 신경질적이지만 위트 있고, 쉽게 상처받지만 동시에 강인하며, 무엇보다 사랑에 목말라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르네 젤위거는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공존하는 주디의 인간적 고뇌와 불안을 깊은 내면 연기로 펼쳐 내며, 주디를 ‘살아 있는’ 인물로 탄생시킨 것이다.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고, 드디어 ‘주디’에서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선보이며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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