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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항구도시 목포가 또 안아주는 것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04-28 06:00:00
▲ 국도 1·2호선 기점임을 표시하는 도로원표.
 4월 어느 날 목포 시청을 찾았다. 두 개의 플래카드가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그 하나는 검은색의 세월호 추모 플래카드였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목포가 참여하게 되었음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의 일에는 전 국민이 동참한다면, 후자의 일에는 개별 행위자인 나도 짐을 하나 걸머쥐었다. 전국을 열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그간 여행이 점과 선만을 그리는 행위에서 공간에 완벽하게 스며드는 면의 여행으로 가자는 계획이고 그 바탕에는 유사한 자연과 문화와 사회적 특징이 있는 곳을 벨트화하고 코스화하여 정례적 여행지로 승화시키자는 일원이었다.

 8권역에 해당하는 목포는 이 일에 광주와 나주, 담양 등 네 지자체가 상생 협력 방안을 찾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올해 시작된 이 사업의 주제는 ‘남도 맛 기행’을 테마화할 예정으로 시작되었다. 당연히 해당 자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우리는 매월 있는 회의를 매주로 확장하고 지자체별로 다니면서 지역의 현안과 현장을 공감하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간 여행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던 지역이 이제는 관광기획자 혹은 연출자의 시선으로 내 눈과 몸을 맞춰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목포,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목포시청 관광과에서 이뤄진 오전의 회의는 9경 9미로 통칭되는 목포시의 대표관광자원과 먹을거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남도가 맛을 주제로 선정했다는 것에는 그만한 자연과 역사와 삶의 자장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몇 해 전 요리사인 박찬일 선생의 백년식당이라는 책에서 광주와 전남의 오래된 식당들이 생략된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컸는데 이유는 뒷장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오래된 맛에 대한 자긍심이고 두 번째는 자본시장의 침입에 대한 경계 특히 현대지향적인 마케팅에 대한 거부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형화와 프랜차이즈화 되어가는 현대의 맛 시장과는 달리 내 자리를 지키며, 내 본분을 알며 묵언수행 하듯이 노포를 지켜온 이들의 한결같은 성정이 그가 취재를 하는 것을 못 미더워하며 불응했다고 토로한 것이었다. 이면에는 취재를 빌미로 얼마나 또 많은 먹을거리와 뒷돈을 내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었다. 자부심 강한 맛, 웅숭깊은 대접은 남도의 기본일진데 남사스럽게 홍보하고 낯을 내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도인의 성품도 이 글에 드러난 것이다. 하여튼 공감의 시간이 지나고 향후 사업진행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는 바닷가로 나갔다. 세월호가 기착된 지 며칠이 안 된 바다는 겉으로는 평화스러웠지만 내면으로는 울음이 우는 듯 이명처럼 귓전이 따가운 날이었다.

 시아바다라 불리는 이곳의 외해는 다도해의 숱한 섬들이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흑산도권, 비금 도초권, 자은암태팔금안좌권 등 겹겹이 섬들이 마치 모성처럼 포근한 목포항의 천연 방파제 역할을 도맡아준 것이다. 그런 항구니 외해로부터 들어오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문물이 들어오고, 물산이 집하되는 천연적 기능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상흔 고스란히 간직

 

 흑산도의 곁에는 영산도라는 섬이 있다. 그곳이 홍어가 가장 잘 잡히는 섬이라 하는데 영산도 사람들이 잡은 홍어를 가지고 목포를 거쳐 나주 영산포에 내려놓으면 그 사이에 잘 삭혀진 홍어가 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때문에 영산포의 이름도 이에 근거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니 섬과 뭍의 관계의 한 단면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망 안에 존재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중심의 목포는 과거의 부산처럼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목포라는 지명의 유래를 보면 영산강이 범람할 때 떠내려 온 나무들이 쌓이는 곳이거나 뭍과 바다 사이를 바로 보기 좋은 장소로서의 목 좋은 곳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모두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로서 목포의 입지 요건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그날의 여정으로 들어가 보자. 삼학도로 간 우리는 마리나 항을 만날 수 있었다. 요트들의 정박지이자 세일링을 배우고 정비하며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곳이다. 화려함 보다는 다소곳한 모습의 수십 여척의 요트들이 기항해 있었다. 목포시청에서 운항하는 요트를 타고 내해를 나갔다. 미끄러지듯이 바다를 타고 가는 요트는 북항이라 불리는 뒷개 쪽으로 가서 목포대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항구로 기착했다. 눈앞으로 고하도와 유달산과 목포의 전경들이 펼쳐지는 바다의 시선은 일품이었다. 한 시간여 동안의 세일링은 목포 바다를 다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항구도시로서 목포가 가진 잠재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 일행은 유달산권역 안으로 들어섰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국도 1, 2호선 출발 표지가 있는 도로원표였다. 이곳에서 모든 일가친척 같은 길이 시작된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하수구의 맨홀 뚜껑 같은 곳에 원표가 있지만 그 옆에 비를 두고 다시 한 번 도로의 시작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 바로 위로 일제 강점기 일본 영사관이었던 곳으로 향했다. 위안부 소녀상이 입구 초입에 있다. 동행한 해설사 선생님이 일제 침탈기와 그 사이에 벌어진 열강의 각축이 한반도 곳곳에 어떤 형태로 잔존하며 우리를 괴롭히는지 풀어내는 설명은 거침없으면서도 우리의 탄식을 자아냈다. 소녀상의 젊음 아래로 짙게 드리워진 검은색의 그림자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닌 한 많은 할머니의 오늘 모습을 담아냈다는 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상흔 앞에서 몸서리를 쳤다.

 

 유달산에 오르니 세월호가 보이고

 

 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 등의 역할로 변화하다 지금은 근대역사관이 된 구 일본 영사관은 오사카의 붉은 벽돌이 바래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오늘 우리를 응시하는 듯 했다. 건물의 지어진 유래와 건축 공간 속에 들어간 상징과 비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건축물 하나가 단지 건축물이 아니라 동시대의 이념과 권력과 지향성을 탑재한 무서운 표징임을 서서히 읽어 나갔다. 건물 중앙부에 일본 황제의 심벌을 넣고, 창문 하나에도 일본이라는 제국의 국호를 넣으며 새롭게 조성된 신시가지의 정중앙에 서 있었던 위세는 시간이 지난 오늘 바라보아도 전혀 변함없는 듯 여전히 폭력적인 시선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의 내부는 일제강점기 자주독립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진 애국운동이 전시되어 있고, 당대의 생활상과 목포의 역사가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건물의 뒤안에는 땅굴이 파여 있다. 이 또한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식민지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징용당한 노동자들의 강제노동 사이에 곳곳을 병참화하며 전쟁에 열광했던 일제의 잔혹상이 여실히 보였다. 그곳은 마치 성산일출봉이나 사이판의 만세절벽에서 느꼈던 참혹함과 다르지 않았다.

 영사관을 나와 유달산으로 향한다. 목포 시민은 이 자락에 안겨서 살고 바다 사람들은 이 산을 나침반 삼아 삶을 일구어왔던 터전이다. 튕겨진 봄의 화살은 산자락 곳곳을 봄기운으로 감싸 안는다. 노적봉을 군량미로 위장하여 전술적 우위를 점했던 이순신 장군의 지략도 보고 시야가 좋은 곳곳에 들어선 누정마다에 새겨진 말뜻을 새겨 보며 걷는 산길도 멋과 예술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오르니 시내의 전경도 전경이지만 내해의 신항만이 보인다. 세월호가 거기 수습을 기다리고 있다. 시 관계자의 말씀을 들어보니 세월호가 거치되고 나서 목포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저마다 노란 리본을 패용하고, 어떤 분들은 전형적인 행락객인데도 놀러 가시다 말고 그 짠한 것들 어찌되었는지 좀 볼라고 왔다고 찾아오신다고 한다. 슬픔과 분노의 공감대가 목포 안에서 가슴사이의 자장으로 연대를 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목포는 지금 온통 노란 물결

 

 우리도 행선지를 바꾸었다. 다른 여타의 관광매력물은 다시 만나기로하고 신항을 향해 갔다. 북항으로 가서 목포대교를 타고 고하도를 지나 사하도에 당도했다. 사위는 온통 노란 색깔뿐이었다. 이 복받치는 슬픔과 격정을 위로할 수 있고 다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색깔 노랑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졌다.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망이 쳐진 곳 내부에 세월호는 곧추 서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인부들은 작업을 위해 청소를 하고 있었고 지난 번 팽목항에서 만났던 은화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심초사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9분의 미수습자가 있는 한 이런 저런 추모행사는 안 된다는 말씀은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과의 간극이 얼마나 먼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실루엣처럼 보이는 배안에 정말 9인의 미수습자들이 그들의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염원을 담아 노란 리본을 메어단다. 그 처연한 슬픔 앞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리본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 바다가 눈물로 보였다. 뭍사람들의 눈물과 섬사람들의 눈물이 한데 고여 이뤄진 눈물의 호수가 바다라는 생각과 목포는 그런 뭍사람의 마지막 인생행로에 종착역을 출발지로 환원해주는 곳이고, 섬사람들의 애환을 담아 그 생명을 연장해 주는 항구였으며, 책임감 없이 회피와 변명만으로 일관된 세월호 사건을 오롯이 감싸주며 씻김을 해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도시로 보였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목포 근대역사관.
세월호의 마지막 정박지, 목포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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