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제안] 한라산 영실코스

▲ 드넓은 `선작지왓’ 너머로 보이는 화구벽.
 일상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그 ‘광경’이 머리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런. 끈덕지게 따라붙는 이미지들이 ‘각성’상태로 이끈다. 영실코스를 통해 만났던 한라산은 그렇게 강렬했다. 잠자리까지 쫓아왔던 ‘경험’이 하나 더 있었다. 수년 전 해남 고천암호에서 조우했던 가창 오리떼의 장엄한 군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 다 공통점이 있다. 알 수 없는 시공간으로 ‘하찮은’ 인간을 불러들였다는 느낌. 짧지만 강렬한 조우…한라산도 그랬다. 영실기암을 거쳐 윗새오름을 지나 우리나라 최대의 암벽이라는 한라산 남벽을 조망하는 길이다.

 

 ▶영실기암·선작지왓…다채로운 풍광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서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어디를 갖겠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으면 무조건‘영실(靈室)’이라고 하겠다고 했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이르면 선작지왓 너머로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통째로 드러난다. 그것은 장관중에서도 장관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한라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반은 만끽할 수 있다.”

 “영실코스는 윗세오름을 올려다보며 오르다보면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감동이 있고,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아래로 푸른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눈맛이 장쾌하기 때문이다.”

 유 교수가 전하는 영실의 아름다움이다.

 관음사 코스나 성판악 코스가 ‘백록담’을 조망할 수 있는 코스라면, 영실코스는 백록담을 감싸는 화구벽과 기암괴석들과 오름들과 산중에 넓게 펼쳐진 고원과 바다까지 만날 수 있는 코스다.

 

 ▶수직고도 300미터 ‘남벽’의 위용

 한라산 영실 코스를 오르는 내내 한라산이 보여주는 자태는 급변한다. 거대한 계곡 우측에 천태만상의 기암 괴석들은 ‘영실기암’이다. 석가여래가 불제자에게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비슷하다 해서 영실(靈室)이라 했다고 한다. 이 풍경 만으로 충분히 압도적이지만 한라산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살아서 백년 죽어서 백년이라는 ‘구상나무’들이 모여 있는 군락지를 만나 잠시 해찰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펼쳐진다. 또 한 번의 급변이다. 고산에 펼쳐진 평원. 선작지왓이다. 분명 오르고 있었는데 지금 여기는 산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고산초원이다. 제주말로 ‘선’은 서있다,‘작’은 자갈,‘왓’은 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작은 자갈들이 서있는 밭’이란 뜻이다.

 지금 선작지왓은 붉다. 군데 군데 털진달래와 철쭉들이 융단처럼 깔린다. 그리고 거대한 ‘남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산의 평원과 압도하는 남벽이 빚어내는 풍광은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차라리 지구이거나 아예 다른 행성에 있는 느낌이다. 평원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남벽’은 정상에서 암벽 하단까지 수직 고도가 무려 300m나 된다고 한다. 윗새오름과 최종 목적지인 남벽 분기점까지 남벽은 계속 따라붙는다. 걷는 내내 표정을 바꾸는 한라산. 어느 길에선 한라산은 위압적인 ‘남벽’과 마주보게 하고, 어느 길에선 넉넉한 곡선을 내어주며 마음을 풀어주고, 어느 길에선 한라산이 거느린 ‘오름’들을 소개한다.

 영실 코스로 갈 수 있는 최대 지점인 남벽 분기점에서 ‘남벽’을 앞에 두고 다시 돌아오는 길. ‘한라산 등산’을 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표면을 걸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다시 지구의 표면을 걸은 것이라고 정정해 봤다가 다시 정정한다. 인간으로선 알 수 없는 제주의 시공간과 아주 잠깐 ‘접속’했다고.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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