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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베이에 들다<8>
‘3만여명 학살’ 야만을 기록하다
2·28 평화공원과 고궁 박물관, 용산사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8-04-20 06:05:01
 오랜 시간 동안 타이빼이가 내게 여운을 준다. 불과 5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여행이었지만 몇 개월째 따라다니고 있다. 대만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본 영화 중 ‘비정성시’(A City of Sadness), 슬픔이 없는 도시, 혹은 슬픔을 모르는 도시는 너무나 처량했다. 한 사람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역사 앞에서 어떻게 조응하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찾아 본 영화가 ‘무지개 전사’였다. 1930년 대만의 고산족이 일제와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사실을 담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했듯이 세계는 정말 많은 인류가 존재했었다. 그런 인류는 각자의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의사 표현을 하고, 새로운 문물을 만들며 영위했지만 점진적으로 생각의 확장, 언어의 발달, 농업혁명 등을 몰고온 호모사피엔스에서 통합이 되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무지개 전사’라는 영화는 바로 이런 인류의 역사적 과정을 함축해 보이는 듯 했다. 수렵과 채집의 생활속에서 이웃 종족과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고산족에게 이들을 미개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일본 제국주의가 들어오며, 신식교육·의료·과학기술 등을 전파하고 특히나 돈이라고 하는 것이 지상 최고의 선인 것처럼 길들인 순간 발생하게 되는 기존 질서의 파괴, 그에 항거하는 고산족의 용맹한 싸움이 거대한 역사를 이루고 있었다. 대만의 어제를 보려는 이들에게는 전통사회의 모습으로서 ‘무지개 전사’가 그리고 있는 세상을 볼 것과 오늘 대만을 이룬 뼈대 위에는 가혹한 제노사이드의 현장이 마치 우리 조국이 그러한 것처럼 엄연히 존재했음을 다룬 영화 ‘비정성시’를 보아야 할 것을 말이다.
 
▲ 장개석 집권 수단 악용 내성인들 큰 희생
 
 대륙에서 밀린 국민당은 그들의 최후 보루로 타이완을 선택했다. 장개석은 사전에 군사와 행정을 보내 정지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치솟는 물가로 내성인이라 불리는 대만 본토 사람들의 삶은 피폐했다. 그러던 중 1947년 2월27일 정부가 금지하던 담배를 몰래 팔던 여인이 발각되어 전매청 직원에게 담배와 돈을 압수당했다. 이에 여인과 두 아이가 애걸하며 돌려달라고 하자 매질을 하였다. 이 사실을 목도한 대만 주민들은 전매청에 항의를 하고 이를 진압하고자 발포한 군경의 총에 한 명이 죽게 된다. 2월28일과 3월1일 결국 이 사건은 대만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내성인과 외성인의 싸움처럼 비화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장개석은 국민당의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내성인인 대만사람들의 사상자만 3만여 명에 이르게 되었던 잔혹한 사건이 바로 2·28 사건이다.

 대만 해방후 2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들어온 본토사람들의 일제 적산의 불하와 모든 권력을 차지하며 시작된 점령군 행세, 더불어 생활고와 인플레, 억압 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는데, 대만 본래의 사람들이 공산당으로 몰리거나 난동자로 몰리며 죽어간 사건이었던 것이다. 대만의 계엄령은 이로부터 1987년까지 유지되는 40여 년에 이르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가만히 들춰보면 우리에게도 참으로 유사한 사건이 있다. 바로 4·3항쟁과 5·18 민중항쟁이 바로 그것이다. 위정자들의 정치가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집착하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은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런 참담함을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찾아 간다.

 2·28 평화공원은 사건이 일어나고 50여 년이 지난 뒤에야 건립됐다. 그 이전에는 누구도 쉽게 2·28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3만여 명이 죽어나간 일을 300여 명이나 3000여 명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을 대만 국민들은 보냈던 것이다. 통탄스러운 그런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마주하기 위해 평화공원에 들었다. 사위는 공원인지라 정돈되어 있고, 약간의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물을 뿜는 분수대와 추모 공간은 격리되지 않고 함께 있었다. 저 물이 역사를 비추는 거울 같아보였고, 그 물의 가운데에 검은 원형의 돌확에는 우리의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바닥에 대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문재 시인의 ‘기도‘라고 하는 시가 생각난다. ‘가만이 두손을 모으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처럼 난 두 손을 거기에 대고 이 비극의 역사, 이 통탄스러운 살육의 만행에 대해 아파했다. 숨죽여 산 사람들, 시신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던 대만 사람들의 고통이 내 핏줄로 다가오는 전율을 느꼈다.

 기념관의 내부로 들어섰다. 당시의 현장을 보여주는 압축된 전시물은 없었다. 만행의 역사를 지우고자 몸부림친 위정자들의 위선이 저 전시장의 무게감을 박탈해 내는 듯 했다. 하지만 어찌 역사를 함부로 지우겠는가? 여기저기에서 온 자료와 증거물과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제노사이드와 이를 치유하기 위한 전지구적 연대의 중심으로 기념관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녹슬은 탄피와 피묻은 옷가지 사이에서 나는 제주와 광주의 기념관이 어쩌면 이리도 똑같은지를 떠올리며 겨우 내부를 관람했다. 방명자들에게 글을 쓰라고 메모지와 펜이 있다. ‘유언 留言’ 그곳에 지난 방문처럼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글을 남기고 빠져 나왔다.
 
▲ 매일 전시품 갈아도 3년은 걸린다는 방대한 유물
 
 이제 고궁박물관으로 가는 차례다. 장개석이 본토에서 밀리면서 사람보다 먼저 챙겼다는 중국의 문화유산이 한데 모아진 곳이다. 그곳의 소장품이 어찌나 많은지 매일 전시품을 갈아도 3년은 보아야 한다는 전설적인 공간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미 여러번 와 보았지만 올 때 마다 다른 모습이 신기하다. 다만 3층에 전시된 옥배추는 아직도 싱싱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92년 처음 대만에 갔을 때 들렸던 전시관에서는 전시장 앞에 년표가 있어서 국제사회의 문명을 이해하는 데 깊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년표는 없고 유물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물론 중국어라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유물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와 비교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청동거울이나 솟대 같은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국제사회의 교류의 역사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이었다. 3시간 동안 꼼꼼하게 둘러보면서 느낀 감흥은 역시 박물관은 혼자 돌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다. 패키지 관광을 오신 한국인들 대부분은 가이드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유물과 역사에 대한 식견이 정말 대단했다. 가장 큰 목소리로 들려서 약간 외국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술술술 막힘없이 설명하는 가이드의 지식 총량 앞에서 나도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다음에는 패키지로 한번 와 볼까 그런 망설임이 들 정도였다.

 박물관을 나와 마지막 일정을 걷고 있다. 이번에는 보리퍄오역 사거리이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다 다시 영화 세트장이나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이전에 보았던 화산이나 송산에서처럼 오래된 건물을 헐어내지 않고 보존하여 다시 활용하는 것이 실용적이었다. 게다가 비워진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가변적 활용 가능성이 있어 좋았다. 광주의 1913 송정역 시장이 장사는 안하고 비워진 세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친구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대만의 마지막 대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남겨 두고 있다. 대만을 대표하는 용산사를 가는 것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 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용산사 앞으로 갔다. 한국의 사찰이 지닌 것처럼 피안교, 사천왕문, 금강문 같은 단계가 없어도 평지에 단일한 건물로 우람하게 자리잡은 용산사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270년의 역사를 지닌다. 이곳은 언제나처럼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분주했다. 정문 우측으로 인공 폭포와 폭포수가 내리는 가운데 힘차게 뛰어노는 잉어들의 몸짓이 여유로웠다. 우리처럼 내세에 대한 기원이 아닌 현실적 기복을 기원하는 사당에는 향불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금전, 애정, 승진, 합격 등의 염원을 담은 사람들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열망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본전이 아닌 후전에는 각각의 보살과 관음상이 있어 그곳에서 이를테면 화타에게는 거강을, 문창제군에게는 학문을 통한 입신을 천상성모에게는 직업의 안전을 수선존왕에게는 바다항해의 안전을 주생낭낭에게는 아이를, 관성제군에게는 재산을 월하노인에게는 중매를 기원 드릴 수 있는 곳인 것이다. 함께 간 이들은 모두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 자신의 열망을 그분들에게 전한다.

 이국에서 이국의 신에게 전달해도 글로벌 시대니 잘 전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이제 타이빼이의 마지막 만찬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식사는 한국의 채선당과 같은 샤브 샤브를 하는 식당이었다. 점심을 햇반으로 처리했던 지라 마지막은 기어코 한숟갈 뜨려고 갖는 노력을 해 보았다. 역시나 나는 남동댁표 밥과 반찬이 아니면 안됨을 마지막까지 절감하며, 텅빈 배를 부여잡고 숙소로 돌아왔다. 탈림이라는 태풍이 계속 대만의 언저리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과연 내일 아침 비행기가 뜰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저녁 배움여행의 결과 발표회에 잔뜩 기대를 걸고 깊은 밤을 기다렸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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