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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호수 생태원에서
해우소 돌담길과 어우러진 인동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05-24 06:05:02
▲ 해우소의 돌담길.
 도보다리가 눈에 확 들어오니 별뫼길 보행이 단절된 느낌이다. 다시 별뫼길로 간다. 맞은편 눈 위로 성산이다. 여기서 보면 횃불처럼 생겼지만 소쇄원으로 가다보면 붓끝처럼 생겼다. 때문에 문필봉이라고도 불렀다. 담양 고서에서는 이 봉우리를 삼봉의 장원봉이라고 했다. 고서에서 보면 봉우리 세 개가 보여, 그중 우뚝 솟은 것은 장원봉이라 하고, 다른 것은 효자봉, 열녀봉이라고 불렀다. 경관이라는 것이 시점에 따라 다르고, 이를 해석하는 눈은 각각 다르지만 어떨 때는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장원급제하라는 서로 다른 이름이면서 한 개로 통합되는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인지 광주댐 제방 왼쪽 수남 학구당은 삼봉서사 라는 이름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성산의 아래에는 식영정이 있다. 벼랑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에 가려 언뜻 언뜻 보이지만 댐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는 바위단애들이 줄지어 있었다. 석병풍이라고 부르던 단애는 광주댐이 들어서면서 발파돼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단애를 잇따르는 곳에 오솔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십리에 걸쳐 심어져 있었다. 이 배롱나무가 만개하고 그림자가 물결위에 비추는 모습을 가지고 옛 사람들은 자미 꽃이 어우러지는 여울이라 하여 자미탄이라고 불렀다. 이 모습 또한 미루어 짐작할 뿐 오늘 그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원래 근동 사람들의 논
 
 지금 걷고 있는 호수생태원은 근동 사람들의 논이었다. 냇가와 연달은 초지의 논은 목동들이 소 꼴을 먹이고 돌아오는 모습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 탓인지 식영정에서 이곳 공간을 노래한 식영정 20영이라는 시를 보면 ‘평교목적’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가사문학관에 들어서면 목동이 소 위에서 피리를 부는 모습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변화된 풍경의 안쪽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갇혀져 있다. 시대가 변하니 모든 풍경은 이렇듯 언어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만다. 소설가 김훈은 그래서 그의 산문집 이름을 ‘풍경과 상처’라고 명명하였던 듯하다.

 호수의 물이 넘실대니 태공들이 강가에 붙어 있다. 이른바 초봄의 산란 특수를 맞아 수심 깊은 곳의 붕어들이 옅은 수초대로 산란 터를 찾아 나오는 것을 붙들기 위함이었다. 90년대 후반 광주호에 배스가 등장하면서 그 많던 낚시꾼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 기억난다. 무지막지한 식탐력을 가진 그 물고기는 토종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 해치웠던 탓이다. 그리고 20여 년간 생존하고자 노력한 붕어는 자신의 몸집을 키우면서 생존해 왔고, 그런 붕어들이 가장 잘 물리는 때가 이 철이니 4월과 5월의 호수생태원 옆에는 낚시꾼들이 장박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그런 낚시꾼들의 사이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노자암이라고 불리는 큰 바위는 총 7기가 있다. 그중 5기를 발굴을 했다. 두기는 이곳을 신성시한 마을 주민의 반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청동기의 고인돌이었고, 유물도 수습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칠성바위라고 했다. 북두칠성의 칠성이자 생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이기도 했다. 하니 당연히 신성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성한 무돌 아래의 사람들이니 돌에 쏟는 정성도 각별했고, 그 시대에도 그러했다.

 식영정의 선비들은 이 바위를 자미탄에서 물고기를 노리며 쉬어가는 물새들의 쉼터라고 해서 노자암이라고 명명했다. 가마우지 바위를 노래한 식영정의 시가 그렇게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 바위 하나에 노자암이라는 한자를 써 두었다. 하지만 광주댐에 수장 되기 전 어떤 몰지각한 이는 바위를 통째로 가져가지 못하니 각자된 글자만 떼어 갔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수장되다가 갈수기와 농번기에만 몸을 보여주는 노자암이 내게는 아직도 숙제이다. 북극성을 자미성이라고 하고, 지실 마을의 골짜기를 만수동이라 하며 은하수로 빗대었고, 소쇄원에는 제월당의 달이 있으니, 하늘의 승경이 여기 칠성바위로까지 이어지는 것인데 이를 해석한 어느 글을 20여 년 전 보았는데, 붙들어 놓지 못해 이런 낱개의 조각만 있다. 지명안에 하늘을 담아낸 인과관계를 밝혀보고 싶은데, 이제는 모든 자료는 그때그때 저장하려 노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갈수기·농번기때만 드러나는 노자암
 
 버드나무가 우거진 데크를 지나간다. 이제 꽃가루도 마지막 생명을 뿌려대는 계절이다. 어느 해인가 눈병의 원인이라고 해서 수많은 버드나무가 사라질 운명이었는데, 이곳 호수생태원의 생명력은 버드나무에 있음이 아이러니 하다. 데크가 꺾이는 곳에 망원경이 있다. 저기 족히 삼사백 미터 맞은편 바위에 낚시를 하는 어르신이 보인다. 그가 좌대를 설치하고 장박을 하는 공간은 개좇바위라고 불리는 곳인 줄 모를 게다. 충효동과 마주하고 있는 바위는 충효동의 샘물이 여근 형상인데 이를 노리고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 1송1매5류를 식재하고, 말무덤과 입석을 두었다는 구전의 진앙지가 그곳이다.

 다시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광주댐 제방이 보이는 길을 간다. 5월말과 6월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 가물치는 산란을 위해 집을 짓는다. 물위에 떠 있는 가물치의 산란집 아래에서 암수 가물치는 그곳을 지킨다.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은 새끼가 성장하며 마쳐진다. 광주호의 가물치는 버드나무가 우거진 이곳으로 들어와 산란을 한다. 그래서 이 길의 이름이 가물치길이 되었다.

 가물치길을 지나니 이번에는 돌밑길이 나온다. 무등산의 큰 돌 아래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 석저촌 우리말로 하면 돌 밑이 된다. 김덕령장군과 그의 형, 덕홍, 동생 덕보가 이 마을 출신이다. 안타깝고도 자랑스러운 그분들의 생애가 생각나는 길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데크를 따라 다닥다닥 옹립해 있다. 마치 카펫을 밟으며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모습이 연출되는 공간이다.

 잠시 걷다가 되돌아온다. 호수 생태원의 클라이맥스인 황지해 작가의 정원을 보러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몇 개의 연못이 있다. 밤에는 잠을 자는 수련과 창포를 식재해 놓은 곳이다. 1m 정도의 수심이라 깊지 않은 곳인데 번식력 강한 수련은 무성하게 여름을 장식할 것 같다.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순채라는 수생식물을 심어 놓았음을 알리고 있다. 소쇄원의 48영시 중 하나가 산지순아 라고 연못에 자라고 있는 순채를 노래한 구절이 있다. 백성을 살리는 벼슬살이가 아니라 백성을 괴롭히는 벼슬살이는 못하겠노라 귀거래를 한 도연명이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의 귀감이었다면, 도연명 보다 100년전 진나라의 장한이라는 사람도 그런 삶이 구차하다고 여겨 사직서를 쓰는데 고향의 순채와 농어가 생각나서 벼슬 안하겠노라고 낙향을 했다. 그래서 생겨난 사자성어가 순갱노회라는 말이다. 1m50㎝의 양지바르고 기름지고 찬물 나는 곳에서 자라는 순채가 여기에 심어진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아직 그 싹은 보이지 않지만 환경위기종으로 보호식물인 순채가 잘 자라서 소쇄원에도 분양을 받았으면 좋겠다.

 
▲클라이맥스 황지해 작가 정원
 
 갓 피어난 꽃창포를 즐겁게 보며 해우소를 찾아 간다. 처음 황지해 작가의 해우소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칙간이 90년대 말 자주 찾았던 화순 모후산 유마사의 늙은 노스님이 소를 키우던 외양간 옆의 칙간이 모티브 인줄 알았다. 전라도 여느 곳에서도 쉽게 만남직한 그런 화장실이 영국의 그 유명한 첼시플라워 가든쇼에 나가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채워진 배를 비우기 위한 우리식 화장실은 자원의 선순환 구조가 그대로 녹아있다. 인간이 먹고 배설한 것을 다시 인간이 먹기 위한 곡식과 채소에 비료로 쓰고 이것을 다시 먹고, 배설하는 체계에 첼시플라워에서는 최고상을 부여하게 된다.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모습, 절제미와 단순미 그 사이의 유머와 해학 등을 높이 산 것이다. 2011년의 일이었다. 그 다음해 다시 영국 쳇시플라워쇼에 초대된 황지해 작가는 DMZ- 금지된 정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최고상을 또 수상한다.


 여느 곳에서도 쉽게 봤음직한 화장실, 친근하게 사용하면서도 꺼림칙해 하는 화장실이 세계를 놀라게 한데 이어 누구도 상상 못할 삼엄함의 현장 DMZ 가 인간의 접근이 봉쇄된 정원으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세계적인 작품이 광주호 호수생태원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고 나는 매번 생태원을 갈 때 마다, 해우소의 돌담길과 어우러진 인동초를 만나고, 녹슨 철조망과 군번이 적인 인식표와 초소와 굳게 박음질이 된 소총을 보고 온다. 그리고 그 옆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각나무와 눈향나무가 잘 자라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그렇게 호수생태원 말미의 두 정원을 짐짓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세계 유일의 분단이 안겨준 도보다리라는 인위적 공간과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그리하여 자연만이 그들의 안식처로 삼고 있는 DMZ.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각의 처소이자 삶의 시작점 해우소. 이렇게 나의 새벽 짬을 이용한 생태원 탐방은 막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 지사에서는 이곳 호수생태원을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생태원을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탠다고 한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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