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북두북 나리고 쌓이소서
바래기 기와에 올린 ‘복’

▲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올린 한 글자 편지. `복(福)’. 고창 부안면 안현리.
 없이 사는 사람끼리 나누는 것으로 새해 아침 덕담만한 게 있으랴. 하여 자꾸만 축원한다. “복 받으십시오, 복 지으십시오.” 일월성신이여 굽어살피사, 햇빛처럼 달빛처럼 별빛처럼 두북두북 나리고 쌓이기를 바라는 그 한 가지 ‘복’.

 집에서 가장 높은 곳, 하늘과 맞닿은 지붕 위에, 거기 곱게 빗은 트레머리 같은 용마루에 내림마루에 귀마루에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올린 그 한 글자 편지를 읽는다. 행여 지워질세라 바래기 기와(망와, 망새)에 정성스레 돋을새김한 ‘복(福)’, 덜 똑똑하고 더 착하게 살아가는 손발 닳은 사람들의 거처, 낮은 지붕들이 이마를 맞댄 고샅고샅마다 복이여, 두북두북 나리고 쌓이소서.

 

 “복 중에 제일 좋은 복은 ‘베풀 복’이여.”

 지나는 사람마다 불러들여 춘 날에는 따숩게, 뜨건 날에는 서늘하게 물 한 그륵이라도 믹여 보내고자픈 할매들한테서 흔히 듣는 말씀. ‘베풀 복’은 스스로 지어 받는 복이다.

 <복이라는 말이 어떤 뜻을 지녔는지 옥편을 찾아봤더니 복(福)이라는 글자는 보일 시(示)에다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이 모여서 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시시한 글자 같은데 사람들은 왜 복(福)이란 말에 한평생 매달려 사는지 이상하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복이라면 돈 전(錢)자에 큰 대(大)자나 많을 다(多)로 짰으면 훨씬 실감이 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건 왜일까?>(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중)

 어떤 이는 이걸 두고 ‘복(福)이란 한 사람(一) 먹을(口) 밭을(田) 보살피는(示) 것’이라고 풀기도 하는데, 권정생님은 ‘복(福)’의 해석을 각자에게 넘기며 다만 ‘보일 시(示)’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신다. ‘보살핀다’는 말이 얼마나 따듯하고 포근하냐고.

 

 <…새악시 처녀들은 새옷을 입고 복물을 긷는다고 벌을 건너기도 하고 고개를 넘기도하여 부잣집 우물로 가서 반동이에 옹패기에 찰락찰락 물을 길어오며 별 같은 이야기를 재깔재깔하는 밤입니다.>(백석, ‘편지’ 중)

 음력 정월 첫 용날(上辰日)은 물동이 이고 마을 샘으로 ‘용알’ 뜨러 가는 날이라 하였다. 하늘 사는 용이 이날 새벽 지상에 내려와 우물 속에 알을 낳는데 그 용알을 먹으면 만사형통한다고 믿었다. 제일 먼저 와서 용알을 떠간 사람은 지푸라기를 잘라 우물에 띄워 두었다. “용알 떠가요, 복 질러가요” 하는 표시.

 권력도 재력도 꼼수도 통하지 않았다. 오직 신새벽 첫걸음한 부지런과 정성과 정직이라야 옹배기에 찰락찰락 복 길을 수 있다는 마을 공동의 공인된 축원이었다.

 

 “도인을 찾아가 점을 보는 사람이 많다는데, 화와 복을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도 금방 꺾인다. 그 시간이 아침 아니면 저녁으로 한 나절 사이다.” 다산 정약용의 말씀이다. “고생스럽게 지낸 사람은 찬양의 대상이 되고, 호화롭게 살아온 사람은 비방의 빌미가 된다. 기림은 나를 괴롭힘에서 생겨나고, 헐뜯음은 나를 즐겁게 함에서 발생한다.”

 나순자(광주 대촌동 압촌마을) 할매의 삶이 그러하였다. ‘나를 즐겁게’ 하고자 아니하였다.

 “영감은 쓸 복, 나는 손복 발복을 타고 났어” 하는 할매.

 “존 일에는 누구나 웃제. 나는 멍청이여서 궂은 일에도 웃어. 먼차 웃어 불문 암껏도 별 일이 아니여.”

 쓴 것도 매운 것도 ‘달게’ 받는 이의 ‘독소(獨笑)’를 다시 다산에서 읽는다.

 <家室少完福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獨笑無人知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다.>

 (정약용, <독소(獨笑) 중>

 

 “내 입으로 들어간 것을 더럽다고 까시럽게 개릴 것이 아녀. 내 입에서 나온 것이 행이나 더런가 봐야제.”

 눈 벌어지면 빗자루 들고 대문 밖 먼저 비질하는 할매들이 이구동성 내어놓는 흔한 말씀이다.

 “나 혼차 잘 삼서 나 복받았다 그것은 복이 아녀. 옆엣사람 우는디 나 혼차 웃을라문 죄시럽게 생각허야제.”

 사람마다 ‘깨깟한 말’을 내어놓는 데 힘쓰는 오래된 마을. 용 용(龍)자, 하늘 천(天)자, 보배 진(珍)자, 별이며 꽃이며 조가비며 하늘에 올리는 저마다의 전언들이 순정하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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