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집과 청와대

 누군가에게는, 이런 ‘첫날밤’도 있다.

 “다 씨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집에 살다가 짱짱하게 기둥 세워갖고 지와 새로 올린 집에서 첨으로 잔 날 밤은 참말로 좋았제. 장가 가서 첫날밤보다 더 좋았어. 장가는 어영구영 뭣도 모르고 갔제만 요거는 계획적으로다가 이룬 일이라서 그 감격을 절대 못 잊아.”

 곡성 겸면 가정리, 청기와지붕을 인 그 집엔 첫날밤의 기억을 살뜰히 간직한 허재근(83) 할배와 오영순(80) 할매가 산다.

 조상 누대로 살아온, 자신의 탯자리. 80여 평생 떠나본 적 없다. 그에겐 몸이자 집이자 우주(宇宙)이다.

 “집을 새로 지슨 것이 한 40년 전인께 우리가 젊었을 때여. 산에서 까끔으로 기댕김서 나무 해왔어. 여그서도 겁나게 먼 디여. 한 이십 리 삼십 리 질을 우리 아저씨가 지게 지고 나는 막 끄십고 그럼서 그놈 나무 져다가 그놈 깡까갖고 지섰어. 참말로 영금 봐불었어.”

 할배와 더불어 청기와집 아래 한 생을 이어온 할매가 증언하는 이 집에 서린 역사다.

 “초가집 살다가 이 집 새로 지슴서 지와를 올렸어. 지와를 여그서 찍었어. 찍은 사람 딜다가 지붕 헐 만치 찍었어.”

 처음부터 청기와는 아니었다.

 “난중에 뺑끼칠헌 거여. 기와 이어놓고 좀 바래길래 내가 올라가서 칠했어. 그리 해야 수명도 더 질다고 헌께.”

 부부가 건너온 세월의 풍상은 기와에도 새겨져 있다. 돌아보면 오로지 몸으로 땀으로 건사해온 한생애였다.

 “나 시집왔을 때 그때는 밥도 못 묵어. 농사 지슬 땅이 어딨어. 땅을 순전히 우리 땀으로 샀제. 평생 낮으로 들에 살고 밤으로 질쌈허고 이 손으로 이 몸으로 쪼깨썩 벌어다가 모태서 장만헌 것이여. 그래갖고 나락 농사 지슬 땅을 여나문 마지기 장만해서 짓고 살았어.”

 내 몸공을 들인 만큼의 정직한 대가 외에 ‘대박’을 바라 본 적 없다.

 “우리가 아들 싯에 딸 한나여. 애기들을 좋게 옳게 갈칠라고 뇌력을 했제. 질에 가다가도 놈의 것이 떨어져 있으문 한피짝으로 가만히 치워놓고 와라 그리 말했제. 쥔 아닌 사람이 보문 혹간 도둑의 맘을 품을 수가 있은께 치와준 것도 존 일이제.”

 “자석들 키움서도 존 것만 보고 배우라고 갈쳤제. 존 것은 구녘을 뚫고라도 가서 보고 배우고, 어만 짓 나쁜 짓은 ㅤ곁에도 가지 말라고 했어.”

 내 힘 닿는 대로 살 뿐 ‘우주의 기운’을 불러들이려 한 적 없다.

 “우리는 ‘눈먼 돈’ 당아 안만져봐. 고런 것은 불버뵈들(부러워 보이지) 안해. 쥔이 나로다 해야 떳떳허제.”

 “눈 볼근(밝은) 돈이 깨깟한 돈”이라고 일러주는 할매. 단정하고 명쾌한 그 말씀에 귀가 씻어진다.

 “밖에 나가문 ‘저 자식’ 그런 소리는 안 들어야제, ‘저 냥반’ 그런 소리를 들어야제. 놈한테 덜 존 소리 들으문 쓰겄소”라고 말하는 할배. ‘나쁜’이란 말이 들어설 자리에 ‘덜 존’을 불러앉히는 게 할배가 살아온 법이기도 하다.

 “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도 자기 이름 석자 욕 안들을라고 깨깟하게 간수할라고 얼매나 애를 쓰고 사는디…”라는 말에 담긴 속내는 청기와 15만 장을 올렸다는 저 높은 집 ‘청와대’에 사는 그분을 향한 고언일 것.

 “새해가 오문 당연히 한 살 더 나이 묵은 사람으로 살 요량을 하고, 주름도 생기문 생긴 대로 갖고 살 요량을 해야제.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이 중헌 나라일은 다 놔뚜고 자기 낯에 주름이나 피고 그런 디다만 힘을 쓰문 쓰겄소.”

 할배에게 ‘명예’란 한사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는 거울. 거울 맞은편에 흰 장막을 쳐서 다른 존재를 다 지우고 오로지 자신의 낯바닥만 비추는 독단과 도취의 거울이 아니다.

 장날이면 물리치료를 받으러 두 양주가 외출을 해야 하는 늙은 몸이지만 깃든 정신은 쾌하고 청하니, 푸른 기와집 살기는 한가지나 ‘혼이 비정상’인 청와대의 그분과 달리 말씀 하나하나에 어긋남이 없다.

 “저 사람 뽄받고잡다, 그런 사람으로 살문 좋제.”

 “내 당대로 나만 좋을라고 사는 것이 아녀. 내 후대로 좋게 살기를 바람서 살아야제.”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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