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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뻣뻣한 머릿결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연인과 합의된 섹스가 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도연
기사 게재일 : 2017-04-19 06:00:00

 # 1 뻣뻣한 머릿결

 주말이었습니다. 이틀 뒤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라 미용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저분해 보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몇 달 미용실에 가지 않은 탓에 혹시라도 지저분해 보일까봐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번 가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맡기는 미용사님께 손질을 받았습니다.

 “혹시 머리 안 감고 오셨어요?”

 엉킨 머리카락에 끼어 빗질이 잘 안되었기 때문인지 불쑥 미용사님이 제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머리카락이 지저분한가? 비듬이라도 있는 건가?’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미용실에 오기 전 집에서 샤워하며 머리를 감았던 상황이라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비누로 머리를 감아서 그래요.”

 천연비누로 머리감기를 시작한 건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 푸’를 실천하는 지인 때문이었습니다. 몇 해 전, 노 푸가 괜찮다는 지인의 말에 함께 해보려 시작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천연비누 사용하기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사실 샴푸를 쓰지 않는 것이니까 이것도 노 푸 아니겠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뻣뻣하게 엉킨 머리 때문에 빗질이 좀 힘든 것 빼곤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하며 1년 이상 천연 비누로 머리감기를 해왔습니다.

 

 # 2 왜 당황스러웠을까?

 엉킨 머리카락에 빗이 끼어 빗질이 안 될 때마다 미안했습니다. 머리를 안 감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습니다. 머리를 감겨주시던 다른 분이 비누로 머리를 감으니 머릿결이 뻣뻣해진다는 말씀을 하실 땐 부끄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머리를 감고 다시 마무리 머리 손질을 받으며 어느 틈에 저는 ‘집에 가면 샴푸로 머리를 감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엔 빗질이 안 돼서 머리 손질을 힘들게 한 것이 미안했는데 나중에는 ‘머리를 안 감았냐?’는 질문과 ‘비누로 감으니 머릿결이 뻣뻣해진다’는 말에 뻣뻣한 머리카락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야 그렇다 해도 부끄러운 마음까지 느꼈던 것은 좀 과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 3 문제로 만드는 건 참 쉽다.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집에 돌아온 뒤로 천연 샴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날 이후로 제 머리카락은 참 뻣뻣하고 이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샴푸로 머리를 감았는데도 머리카락은 여전히 뻣뻣한 것 같고 빗질할 때 뻣뻣한 머리카락이 계속 엉키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머리카락을 쓸어보면 분명 비누로 감았을 때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있는데도 말이죠.

 무심코 집어든 비누로 머리에 비누칠을 하다가도 순간 뭔가 잘못한 것처럼 금세 비누를 내려놓고 다시 샴푸로 머리를 감는 제 모습에서 이상함이 느껴집니다. 고작 한 마디 말이었고 심지어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말 한 마디에 일상의 한 부분을 바꿔버린 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머릿결은 부드러워야 하고 빗질할 때 머리가 엉키지 않도록 곱슬 거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TV 광고에 찰랑이는 긴 생머리의 광고모델이 나와 부드럽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탓에 어느새 뻣뻣하고 곱슬 거리는 머릿결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지게 된 것은 아닌지…. 그렇게 이 사회에서 특정한 모습을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으로 만드는 것에 저 또한 젖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참 쉽다. 힘 있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감추거나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일은 정말 쉽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 일이었습니다. 미용실에 다녀온 지 보름쯤 지났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샴푸로 머리를 감고 출근했습니다. 뻣뻣한 머리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다시 비누를 집어 들기는 망설여집니다. 얼마 뒤 다시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 혹시나 또 ‘머리 안 감고 오셨어요?’라는 말을 듣게 될까 그렇습니다.

 “현역 장병의 동성 성관계는 현행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군형법 상 ‘추행죄’로 처벌하고 있다”

 최근 육군참모총장 지시로 군대내 동성애 군인을 색출해 처벌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마주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섹스하는 것도 ‘동성’이라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게 어이없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연인과 동의된 섹스를 할 때조차 ‘동성’이라는 이유로 처벌 받는 사회에서 비누칠로 뻣뻣해진 엉켜드는 머리카락이 부끄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나라에서 성별, 종교, 국적, 장애 유무, 연령 등 수많은 ‘다름’은 감추거나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머리카락을 만지다 문득 든 생각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나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좋아하는 연인과의 합의된 섹스조차 처벌하는 군 형법 92조의 6이 어서 빨리 폐지되기를 희망합니다.

 군형법 92조의 6 폐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10문10답(http://lgbtpride.tistory.com/73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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