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립, 누구나 대세라 말하지만, 아직 걸음마

▲ 탈시설-자립생활 관련 광주시 회신 공문.

 #1_10년 만에 제구실하는 자립생활 지원 조례

 11월 9일, 시청 본관 앞에 천막이 한 동 들어섰습니다.

 5년 동안 100명에게 탈시설-자립생활 지원하라!

 2016년 12월까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 수립을 위한 TF를 구성하라!

 2013년 3월까지 탈시설-자립생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

 2016년 6월까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라!

 큼지막하게 이 네 가지 문장이 적힌 플래카드를 걸고 있던 천막이었습니다. 11월 9일부터 18일까지 이어가던 농성은 농성 10일 만인 지난주 금요일에 마무리되었습니다.

 

 #2_의미 있는 광주광역시 회신

 5년 동안 100명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하겠다!

 자립생활 지원계획 수립을 위한 TF 구성, 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 수립,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자립생활 지원 협의체 구성 그리고 2017년 탈시설-자립생활 장애인의 자립 지원금 10명분과 확인되는 만큼 추경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회신 공문에 담겨 있었습니다.

 2006년 6월 26일, 전국 최초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가 제정된 후 만 10년 4개월 23일 만의 일입니다.



 서울시에 이은 전국에서 두 번째 구체적인 인원을 명시한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약속이었습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금요일 오후에 천막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퍼포먼스도 진행했고 폭죽도 터뜨렸습니다. 그만큼 기뻤고 또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3_ 우회로는 없다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집에서 늘어지게 뒹굴뒹굴했고 애써 익숙해진 농성장의 느낌들을 털어내려 힘썼습니다. 월요일, 오랜만에 사무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쩐지 좀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준비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을 마음껏 소리 높이 외치던 날, 21세의 중증 발달장애인 청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의 장례식장에서 낭독된 부모님 전상서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나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셨고 집무실과 접견실에 앉아 시장님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전까지 천막을 지켰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운동 활동가들과 함께였습니다.

 

 #4_ 지금부터 여기에서

 5년 간 100명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광주시가 발달장애인이 거주시설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습니다. 5년 동안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해야 할 100명의 대다수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에 비춰 생각해 보면 지역 사회에서 거주시설로 들어가지 않도록 지원하는 일과 시설을 벗어나 지역 사회에서 사는데 필요한 지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

 10년 만에 구체적인 인원을 적시한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광주시의 결정과 약속이 온전히 이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꼭 그 만큼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마련이란 요구가 온전히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지 않으면 5년 동안 100명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은 분명합니다.

 11월,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10년 동안 묵혀 둔 숙제는 하고 3월의 새싹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밤, 날이 밝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누군가의 눈꺼풀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눈꺼풀만큼이나 무겁고 힘겹게 부릅떠져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릅뜬 그 눈들이 만나 첫 눈이 내리기 전에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밤과 낮이 바뀌는 게 아님을,

 발밑의 지구가 끊임없이 태양 주위를 돌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아는 우리는,

 시간만 흐른다고 거주시설에 있는 누군가가 지역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시간만 흐른다고 지역 사회에 있던 발달장애인이 거주시설로 향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음을 압니다.

 10년 만에 자립생활 지원 계획 수립의 실마리가 마련된 것처럼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단초 또한 마련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2월, 2016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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