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부끄러움 알라…‘수령’의 행동지침
“탄핵정국 대선행보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

▲ 목민심서.
 “백성을 부양하는 일을 가리켜 목(牧)이라 한다.(중략)‘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본문 中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에 관해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정약용은 19년의 유배생활 동안 탐관오리의 핍박에 신음하는 백성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탄에 머물지 않고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목민심서’를 집필했습니다. ‘목민심서’는 수령(고려, 조선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의 통칭)으로서의 행동지침 즉 업무 메뉴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며, 대선후보들의 행보가 시작된 요즘에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고전입니다.

 “성인의 시대는 너무 멀어서 그 말씀이 희미해져서 그 도(道) 또한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본문 中

 정약용은 백성을 길러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습니다. 백성이 자립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백성관입니다. 정약용은 백성의 처지에 맞게 세금을 거두고, 거둔 세금을 바르게 집행하면 백성이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금 정의 실현을 두고 빨갱이 프레임을 덧씌우는 수구세력과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박사모 등의 수구세력 기생단체들은 정약용마저 빨갱이로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웃픈 현실입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중략) 아래서는 부모를 공양하려는 효성에서 고을살이를 구걸하고, 위에서는 그 효도(孝道)가 도리에 맞음으로 허락하였는데, 그 관습이 오래되어 풍속을 이루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우(虞)·하(夏)·은(殷)·주(周)의 시대에는 이런 일이 결코 없었다. 집이 가난하고 부모는 늙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정은 진실로 딱하다. 그러나 벼슬자리를 위하여 사람을 택하는 법은 있으나, 사람을 위하여 벼슬자리를 고르는 법은 없으니, 한 집안의 봉양을 위하여 만백성을 다스리는 수령의 자리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본문 中

 

“백성이 자립할 때 물심양면 도와야”

 집안의 봉양을 위하여 5000만 국민을 우롱한 최순실은 죄수복을 입고도 뻔뻔했습니다. 최순실이 고위직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연일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고르고, 심지어 없는 벼슬자리도 만든 최순실 같은 인물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망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여러분 같은 이들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요지경 속 같은 세상이 망하지 않고 돌아갑니다.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가난한 친구와 궁한 친척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즉시 영접하여 후하게 대접해 보내는 게 마땅하다.(중략) 대개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글을 짓는 것과 같다. 좋은 제목을 가지고 잘 짓는 것은 잘한다고 일컬을 게 없으며, 반드시 어려운 제목으로 묵묵히 생각하여 남달리 문장에 운율을 주고, 번쩍 빛이 나게 하며, 쨍그렁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이 고수(高手)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마땅히 측은히 여겨 사랑해주고, 반갑게 영접하며, 얼굴빛도 유쾌하게 하며, 웃음과 말씨도 화평하고 즐겁게 하고, 따뜻한 방에 재우고 풍성하게 음식을 먹이고 새 옷을 주되, 돌아갈 때에는 그의 돈주머니도 넉넉히 채워주어 낭패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본문 中

 학창 시절 요즘의 왕따만큼은 아니어도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친구를 괴롭히는 무리에 끼어 있었으며, 그 친구와 짝꿍이 되자 심하게 화를 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자꾸만 나이가 늘어갈수록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괴롭힘을 당할 만한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할머니와 둘이 살던 가여운 친구였는데, 그땐 왜 그리 그 친구를 미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를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김으로써 저의 우월함을 확인하고자 했던 심리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위의 대목을 읽으며 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이 진정한 대접이지,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은 대접을 잘 한 것이 아니라는 정약용의 메시지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 합니다.

 선조들은 잔치를 열면 동네의 거지나 미치광이에게도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거지나 미치광이를 내쫓는 것보다 아름다운 풍경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덕(美德)이라 칭했나 봅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위하는 것도 좋지만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 더 아름다운 풍경이라 생각하며, 삶이란 이러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서 의미를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강한 자에겐 원망받고 약한 자에겐 은혜를” 

 “관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생인데 주탕이라고도 하고, 또 하나는 비자인데 수급비라고도 한다. 기생은 비록 가난하나 모두 돌봐주는 자가 있으니 수령이 보살필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운 돈으로 수령의 옷을 바느질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가장 불쌍한 이는 추한 용모의 수급비이다. 그들은 겨울에는 삼베옷을, 여름에는 무명옷을 입고, 머리는 쑥대같이 하여 밤에는 물긷고 새벽에는 밥짓느라 쉴새없이 분주하다. 수령이 이들을 보살펴 때때로 옷도 주고 곡식도 주며 그 지아비의 형편도 물어 소원도 이루어주면 좋지 않겠는가? 무릇 수령으로서 잘 다스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아전의 원망이 있을 터인데, 만일 아전·군교·노비가 모두 수령을 원망하면 괴롭지 않겠는가? 강한 자에게는 원망을 받고 약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면 어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본문 中

 순전히 한 문장 때문에 위의 대목을 소개합니다. ‘강한 자에게는 원망을 받고 약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면 어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멋진 문장이지 않습니까? 강한 자에게 원망 받는 것은 공포를 대동합니다. 강한 자는 강하기에 나의 존재를 없애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사회에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들거나 약자가 강자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강자에게 대항합니다. 인간에게는 강자가 주는 공포를 극복하고 미덕(美德)과 바름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내재되어 있으며, 인간은 이러한 열망을 지닌 존재이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됩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곧, 바이! 展(전)’을 기획한 표창원 의원과 이 전시에 출품한 이구영 화백이 수구세력과 수구세력 기생단체들 그리고 일부 진보세력에게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풍자란 약자가 강자를 고발하는 행위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입니다. ‘곧, 바이! 展’은 약자인 예술가가 절대강자인 현직 대통령을 고발하는 풍자입니다. 이를 두고 매국노·빨갱이·여성 비하의 프레임을 내세워 깽판을 부리는 자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풍자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이며, 그들의 깽판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몸부림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직분은 백성을 가르치는 일일 따름이다. 전산(田産)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부세와 요역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형벌을 밝히고 법규를 갖추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모든 정사가 정비돼 있지 않아서 가르칠 겨를이 없었으니, 이 때문에 백대에 이르도록 선치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방법은 솔선수범

 살피건대 주나라에서는 백성을 가르치는 데, 매달 과제를 주고 때로 감독하여 그 덕행을 평가하듯 등급을 매기고, 그 허물과 약을 자세히 따져 밝혔다. 무릇 그렇게 해야 왕의 다스림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수령은 오래 있어야 3년이요 짧으면 1년이니, 수령은 과객일 뿐이다. 한 세대가 지나야 인(仁)이 일어나고, 100년이 지나야 예악(禮樂)이 일어나는 것인데,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과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수령이 되었으니 백성이 오랑캐나 짐승의 지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서서 보기만 하고 구할 생각을 않는다면 이 또한 도리가 아니니, 예속을 권장하여 실행케 하고 향약을 힘써 닦는 일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본문 中

 정약용에 의하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곧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며, 백성을 가르치는 방법은 솔선수범입니다. 솔선수범은 ‘목민심서’ 전반에 퍼져있는 정약용의 핵심 사상입니다. 솔선수범하는 수령을 보고 배운 백성들이 자율적으로 도덕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이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 최종 목적입니다. 지난 글을 통해 저는 우리 모두가 또 다른 최순실이며, 최순실 사태를 통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이뤄내지 못하면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또한 일상에서 이익과 편리를 위해 꼼수를 부리기 때문에 우리 또한 최순실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선수범하는 수령의 부재로 최순실이라는 괴물이 등장했고, 우리 역시 그런 최순실을 닮아가게 된 것이라 변명해봅니다. ‘목민심서’에 따르면 한 세대가 지나야 인(仁)이 일어나고 100년이 지나야 예악(禮樂)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한 세대와 우리의 100년을 이끌어 온 수령의 모습은 어땠나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중 솔선수범했던 수령은 몇 이나 될까요.

 “단아하고 품행이 방정한 사람을 교장으로 뽑아서 모범으로 삼고 예로써 대우하여 염치(廉恥)를 길러야 한다. 먼 변방에는 벼슬을 한 사람이 있는 가문인 사족(士族)은 드물고 벼슬을 한 사람이 없지만 부유하거나 위세가 큰 가문인 토족(土族)이 많다. 사족은 향교에 왕래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토족이 향교를 독차지하여 그들의 소굴로 삼았다. 이들 토족 무리는 대부분 배운 것 없는 무식쟁이들로, 끼리끼리 모이고 당을 만들어서 서로 알력하게 되면 남의 숨은 약점을 들추어내고, 이권을 다투면 정권 다투듯이 하며, 간사한 아전과 결탁해서 감사에게 허튼 소문을 알리며, 수령이 총애하는 기생을 통해 뇌물을 바치며, 항상 아전과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너나들이하면서 교제하며, 늘 술집에서 만나서 아침저녁으로 싸움질만 한다. 그들이 궁리하는 것은 부잣집 자식을 끌어들여 교장이 되게 하여 뇌물을 받아 배불리는 것뿐이다. 수령은 마땅히 이런 풍속을 알아서 단아한 선비를 골라 교장으로 삼아야 한다.” -본문 中

 

불의가 활개치는 시국, 고전의 가치를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염치(廉恥)를 기를 것을 설파했습니다. 염치를 기른다는 것은 곧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짓이 부끄러운 짓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하는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박사모 등의 수구세력 기생단체들을 보며 염치의 유무가 사람을 얼마나 비열하게 만드는지 실감합니다.

 위의 대목에 등장하는 사족(士族)과 토족(土族)은 오늘날로 치면 깨어있는 지식인과 재벌입니다. 정약용이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학교를 떠난 지 오랩니다. 재벌은 학교에 건물을 지어주고 관계자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학교를 신입사원 연수원으로 변태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며, 직선제로 치러지는 학교장 선거마저 돈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정확하게 표가 갈리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위안할 뿐입니다. 고전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닌, 내가 바뀌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라고. 미덕(美德)과 바름을 추구하며 사는 이들이 묵묵히 맡은 일을 수행하며 불의에 물들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고전입니다. 불의가 활개 치는 시국이기에, 고전을 더욱 단단히 붙잡으시길 권합니다. 고전도 우리를 꼭 붙잡아 줄 것입니다.

김태균<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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