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맞아요?
“너 다운 것을 발견하렴. ‘너’로 살도록 해”

 꼭대기를 향해 매일 돌을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기-승-전-공부, 기-승-전-성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내 자신이 문득 느껴지면 계란장수의 봉고트럭에서 흘러나오는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를 무한 반복하는 녹음기하고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으로 숨이 막히고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대하기 힘든 순간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나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문정이는 내 영혼에 비타민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 그 `비타민’은 추운 겨울 칠흑 같은 어둠 사이로 비치는 한줌 햇살처럼 따사로웠고, 마치 산소가 고갈된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 주어 백두산 천지에서 퍼 온 한 바가지의 물과 같이 청량했다.

 그런데 두해 전 겨울, 그런 문정이가 갑자기 이사를 가버리자 나는 마치 우울증이라도 앓는 것처럼 하루 종일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 도무지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입맛도 뚝 떨어졌다. 그때의 흔적인 택배 박스가 아직도 작은방 침대 밑에 수북이 쌓여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인터넷쇼핑몰을 찾아 `클릭질’을 하며 지름신에 영혼을 저당 잡혔던 물증들이 가득 들어있다. 똑같은 모양의 옷이 흰색과 검은 색, 두 개씩이나 있고 한겨울이라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여름 해변용 나들이옷도 색깔별로 사서 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 상자 안에 처박아 두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장동건을 닮은 같은 과 선배를 혼자 좋아하다 퇴짜 맞던 때 나타난 증세와 거의 똑같았다.

 

 실연 상처 마냥 아팠던 문정이의 부재

 

 문정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나랑 만나서 더욱 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학원이란 곳이 원래 매월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고 또 그만두고 떠나기도 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왜 문정이가 그만두자 나는 유독 힘들어 했을까? 더군다나 문정이는 밝게 웃으며 자주 전화도 할 것이며 틈나면 놀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남겼는데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 급격하게 원생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고, 계절적으로도 겨울이 시작되는 길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만가지 정을 쏟았던 문정이마저 떠나버리자 한심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버린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 문정이가 떠나자 실연의 상처를 떠올릴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아마 그 때 문정이는 내 일상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정이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은 저녁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셨고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3시에는 아무도 집에 없어 문정이는 우리 학원으로 하원했다.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원장실에 가방을 두고 근처에 있는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한 시간 동안 피아노를 치고 다시 돌아온다. 이 시간이 되면 친오빠 한 명과 사촌오빠 두 명, 도합 세 명의 오빠부대도 학교를 마치고 등원한다. 드디어 사남매가 완전체가 된 것이다. 완전체가 된 사남매는 똑 같이 공부하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군것질도 단체로 하며 잠들기 직전까지 한 몸처럼 같이 다녔다.

 세 명의 오빠들과 다니다 보니 문정이는 절대 치마를 입으려 하지 않았다. 분홍색이나 노랑, 빨강계통의 옷도 입지 않았다. 오빠들의 헌옷을 물려 입는 일은 없었지만 가방이나 신발, 겉옷은 오빠들과 같은 계통의 블랙으로 무장하고 다녔다. 문정이 엄마는 이렇게 가다가는 문정이가 너무 선머슴처럼 될까봐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옷차림은 털털했지만 매우 섬세한 성격이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나이가 두 세 살이나 더 많은 오빠들 보다 넉넉했다. 애어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아이가 문정이었다. 착실하고 꼼꼼해 공부도 잘 했고, 항상 조용하면서도 할 일은 다하는 성실한 아이였다.

 

 이모네집 출입금지 통보에 글썽

 

 문정이가 4학년 때의 일이다. 아빠가, 오빠와 문정이를 독려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적이 오르면 용돈을 올려주었다. 용돈을 욕심내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정이는 매번 시험을 잘 치러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집안일도 잘 거들어 부모님의 칭찬을 독차지 했다. 문정이는 매번 시험을 보고 나면 용돈이 늘어나는 바람에 초등학생으로는 제법 많은 액수를 받아가게 됐다. 그러자 오빠는 대여섯 발이나 튀어 나온 입으로 아빠에게 따지며 불만을 토해냈다. 문정이는 4학년이니까 공부가 쉬워서 100점 받기가 어렵이 않지만, 자기는 6학년이라 배우는 내용이 어려워서 백점 받는 것은 훨씬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아버지께 항의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문정이는 아빠에게 용돈을 받으면 꼭 오빠에게 나누어 주었다.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완연한 봄이 시작 되던 어느 날, 문정이가 힘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풀이 죽어 학원에 왔다. 나는 평소, 근심 가득한 아이의 그늘진 얼굴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문정이를 근처 분식집에 데리고 가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문정이는 나를 외면하며 입을 꾹 닫고 묵묵부답 대꾸가 없다가 계속되는 나의 추궁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오빠가 이모집에 그만 가래요. 그리고 이제부터 이모네 오빠들 하고 놀지도 말래요.”

 이모네는 문정이와 같은 아파트 앞동에 살면서 거의 한 식구처럼 지냈는데 어른들이 사소한 문제로 다투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왕래를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문정이는 눈치 채지 못하고 예전처럼 틈만 나면 이모네로 가서 오빠들과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왔다. 보다 못한 오빠가 사정을 이야기해주고 이모네집 출입금지 통보를 한 것이었다. 글썽이던 눈물을 훔치더니 문정이는 튀김을 욱여넣고 씹다가 오뎅국물을 들이키더니 다부지게 말했다.

 “어른들이 싸웠지 우리가 싸웠나요? 나는 그렇게 안해요. 옛날이랑 똑 같이 할 거예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어른들의 관계를 알게 된 오빠들은 놀이터나 학원에서 만나도 보지 못한 척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문정이는 오빠들을 불러서 말을 걸고 과자도 나누어 주며 예전과 다름없이 대했다. 아이들 싸움이 커져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어른 싸움이 아이들에게 번지는 경우도 많다. 대게 이런 경우는 매우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갈수록 일이 꼬여버려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위험이 크다. 다행히 문정이네 식구들은 문정이의 고운 마음과 강한 의지로 문제가 더 커지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할래요. 그게 편해요”

 

 거의 날마다 학원을 마치면 문정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안에서 문정이가 다짜고짜 말했다.

 “선생님,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맞아요? 선생님, 저는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기 싫을 때도 많아요. 그치만 그렇게 하는 게 저에게 더 편해요. 그래서 고민하지 않기로 했어요.그냥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려고 마음 먹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문정이는 이렇게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무슨 사연으로 문정이가 어른들한테 길들여졌는지 궁금했다.

 “선생님, 5학년 때 체육시간이었어요. 체육수업이 있었는데 날이 너무 덥고 그날 달리기한다고 그래서 친구랑 교실에 남아 있고 운동장에 안나갔어요. 혹시 남자애들이 찾으러 올까봐 과학실로 들어가 책상 아래 숨어 있었어요. 그냥 괜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문정이와 친구를 찾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은 부모님께 전화까지 했고 문정이 엄마는 문정이가 실종이라도 된 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났단다. 문정이는 정말로 별 생각 없이 단지 달리기가 하기 싫어서 한 행동이었는데 후폭풍이 너무 거셌다. 그리고 그 사건은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주홍글씨처럼 문정이를 따라 다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기로. 어차피 어른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고집 피워봤자 들어주지도 않을 거란다. 생각만하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가지 말라면 안가고 친구도 가려 사귀라하면 그렇게 하겠단다.

 나는 문정이가 아무 생각 없이 어른들 말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만 있으라”는 어른들의 명령를 고분고분 따랐던 세월호 아이들까지 겹쳐지며 숨이 탁 막혔다.

 다음날부터 수업이 비는 시간이나 귀가하는 학원차 안에서, 내가 경험 했던 비겁하거나 나약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른들이라고 모두 용감하고 강한 것은 아니며 어떤 측면에서는 더 지혜로운 것도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급한 마음에 너무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나 혼자 격분해서 화를 내거나 씩씩거리기도 했지만 문정이는 시종일관 묵묵히 잘 들어주었다. 퇴근길 문정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나이를 뛰어 넘어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다.

 `너다운 것을 발견해라. 진득하고 주변 친구들을 잘 배려하고 타자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는 것은 참 소중한 감정이다. 평소에 동물들을 잘 돌보고 관심을 넘어서 제대로 알려고 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마라. 너 안에서 나오는 깊은 울림을 잘 기억하고 매번 생각하고 또 맘에 새겨서 그런 너로 살도록 노력하기 알았지? 그리고 이런 것은 엄마에게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일이 아니야.’

 

 “자기주도적 모습 회복중” 반가운 소식

 

 자동차 안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의 지지를 확인한 문정이는, 지금까지 완고하고 보수적인 부모님과 선생님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정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긴가민가 망설이던 태도를 버리고 보다 자기주도적인 모습을 서서히 회복했다. 한편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재되어 있던 어쩔 수 없는 완고함 같은 나의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재기발랄한 문정이와 깔깔거리며 하루 일과를 정리 하다 보니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서로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문정이가 갑자기 전학을 가버렸다.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열병처럼 찾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남아 있는 아이들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정이에게만 관심을 쏟은 나머지 다른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내 모습이 이제야 보였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던 순간들을 반성하며 다시 힘을 냈다.

 문정이는 지금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며 안부라도 확인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이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면에 장착된 자신만의 체로 거를 것은 걸러서 잘 받아내는 모양이다. 한 동네에 사는 조카가 문정이와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 조카는 나와 문정이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어서 묻지 않아도 학교에서 보았던 문정이 이야기를 잘 전해준다.

 얼마전 그 조카가 민정이 소식을 또 전해준다. 옆자리에 있는 한 남학생이 집에서 라면 한 봉지를 가져와 쉬는 시간에 바삭바삭 소리 내며 혼자 먹으면서 한입 얻으려는 친구들을 약올렸다고 한다. 문정이는 먹는 것으로 친구들 놀리는 꼴은 절대 못 보는 성깔이다. 다음날, 문정이는 라면과자를 학급 인원수대로 사서 그 남자애만 빼고 다들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치사하게 먹는 것으로 친구에게 놀림 당한 기분이 어떤지 직접 느껴보라는 거였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그 남학생은 어제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정이는 그 친구 몫으로 준비해 숨겨둔 과자 한 봉지를 슬쩍 건네주었다.

 한 때 나의 비타민이었던 문정이. 그 문정이가 지금은 푸른 꿈 가득한 이팔청춘 친구들의 비타민이 되어 활력을 팍팍 넣어주고 있단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이영섭<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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