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휴식 위한 기호품인가
일 효율성 높이는 생필품인가

 요즘 대학생들의 열에 일곱은 커피를 들고 등교하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전공서적을 한손으로 들어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다른 한손으로 커피를 마시는 학생들을 볼 때면 이제 커피가 기호품을 넘어 생필품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호품으로서의 커피는 휴식과 여유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생필품으로서의 커피는 피로를 잊게 하는 각성제로 기능하기에 커피를 마시며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지 못하곤 합니다.

 직장인들은 또 직장인들대로 출근할 때나 업무 중간 중간에 커피를 마십니다. 직장인들의 커피 역시 휴식이라기보다는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에 가깝습니다. 커피의 힘으로 일을 빨리 끝내고 남은 시간에 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일을 빨리 끝내면 또 다른 일이 주어지기에 커피의 힘을 곱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외출한 동료가 커피를 사오면 통상적으로 “고맙다” 혹은 “잘 마실게”라고 말하지만 커피를 사다준 것이 고맙기만 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종교 개혁자들 ‘금주’위해 커피 주목하다

 

 중근동 지방을 여행한 레온하르트 라오볼프는 1582년 ‘아침의 나라들로 가는 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그는 터키인들과 아랍인들이 즐겨 마시는 뜨겁고 검은 색의 음료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들은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는 훌륭한 음료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음료를 ‘차오베’라 부른다. 그것은 잉크처럼 검은 색이고 위장이 약할 때는 도움이 된다. 그들은 이 차오베를 아침 일찍 공공장소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누구 앞에서나, 그리고 도기(陶器)나 사기(砂器)로 된 사발에 부어 마시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단지 조금씩 마시고 계속해서 옆 사람에게 돌려서 마시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빙 둘러서 바싹 다가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기나 색깔이 월계수처럼 보이는 ‘분누’라는 열매를 물에 넣고 끓인다. 이 음료는 매우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것을 따라서 팔거나 분누 열매를 파는 상인들을 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커피는 대략 17세기에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1650년경 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커피를 몰랐지만 1700년경 커피는 유럽에서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음료가 되었습니다. 커피가 처음으로 유럽에 보급됐을 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주로 궁정 귀족 사회와 부르주아 사회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궁정 귀족 사회는 커피 마시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부르주아 사회는 ‘커피’ 자체를 중시했습니다.

 “정신을 말짱하게 하는 음료로서의 커피와 성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커피, 이러한 방향으로 커피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세력이 작용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영국의 청교도주의, 더 일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는 커피를 이러한 의미에서 규정하고 그것을 그 영육(靈肉)을 위한 음료로 선언한다.” - 본문 中

 커피가 유럽에 퍼지던 시기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시기와 비슷합니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시도했던 금주 운동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는데, 이들은 금주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청교도적인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술을 대체 할 음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술의 대체음료로 커피에 주목한 종교개혁자들은 커피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커피는 사람을 이성적이고 훌륭하게 만든다.’는 커피 이데올로기를 생산했습니다.

 

 ‘정신 노동에 도움’ 근대 대표 음료로

 

 “의심할 바 없이 커피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료다. 그러나 이 측면만을 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분명히 커피는 17세기 이래 발전되어 온 바와 같은 합리주의적인 유럽 문명에 적합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근대의 약물학은 그것을 입증한다. 커피는 함유된 카페인을 통해서 중앙 신경 계통에 영향을 미친다. 커피는, 20세기의 한 대표적인 학술 서적이 표현하듯이, ‘이성의 활동을 증대시키고, 인지 과정들과 연이은 사고들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보다 분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하지 않고 정신 활동을 자극한다.’ 바로 이 특성들이 커피를 부르주아적 근대의 음료로 만드는 것이다.

 (중략) 17세기의 부르주아적 인간은 정신적인 태도에서나 육체적인 태도에서나 앞선 세기들의 인간들과는 구분이 되었다. 중세적 인간은 대부분 노천에서 육체노동을 한다. 부르주아는 점점 더 정신노동자로 변해 간다. 그의 일터는 사무실이고 신체는 앉은 자세를 취한다.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은 시계처럼 동일한 형태로 규칙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노동과 생활 방식이 전 조직에 관계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커피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약제로 작용한다. 커피는 인체에 스며들어 합리주의와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이데올로기적, 정신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화학적, 약리적으로 완수한다. 인체에 흡수된 커피는 인간의 생리적 생태를 합리주의적 원리의 필요에 따라서 변형시킨다. 결과는 새로운 요구들에 따라 기능하는 합리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 진보적인 신체이다.” - 본문 中

 ‘커피는 신체 내에서 화학 작용을 일으켜 인간의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커피는 정신노동에 도움을 주는 음료이기에 근대를 대표하는 음료가 되었다. 또한 커피가 등장하기 전에는 효율적인 정신노동을 위해서 종교생활을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했는데, 이제(17세기)는 커피가 종교대신 정신을 맑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위의 인용을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687년 혹은 1688년에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가 런던의 타워가(Tower street)에 커피 하우스를 연다. 그는 그 업소를 자기 성(姓)을 따서 로이드의 커피 하우스라 이름 지었다. (중략) 로이드의 커피 하우스는 항해와 관련 있는 사람들, 즉 선장, 선주, 상인, 보험 회사 대리인들의 모임 장소로 발전하였다. (중략) 간단히 말해서 커피 하우스는 주로 사업을 위한 장소였다. 여기서 사업은 반드시 상업적인 성격일 필요는 없었다. 17, 18세기의 부르주아 층은 정치, 예술, 문화 역시 사업생활로 이해했다. (중략) 사람들은 17, 18세기에 사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커피 하우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거기에 놓여 있는 신문들을 읽었다. 커피 하우스와 신문들, 커피 하우스와 저널리즘, 커피 하우스와 문학, 이것들은 오래된, 20세기까지 살아있는 결합이다.” -본문 中

 

 영국이 커피 대신 차 마시는 이유

 

 오늘날의 카페와 같은 커피 하우스는 17세기 말에 등장한 것 같습니다. 당시 커피 하우스는 사업을 위한 장소였으며, 사람들은 커피 하우스에서 만나 소식을 듣고 사회 현안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커피 하우스는 기자들과 작가들의 일터이자 그들이 직업적 영감을 얻는 곳이었는데 커피 하우스에서의 대화가 구어체 문학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1700년경 영국은 유럽의 가장 큰 커피 소비국들 중에 하나였는데 반세기 뒤에 커피는 단지 부차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다. 차가 커피를 대체한 것이다. (중략) 17세기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유럽의 모든 다른 민족들처럼 영국인들도 처음에는 아랍의 커피를 수입했다. 커피가 일시적인 유행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 음료가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여러 국가들은 그들의 커피 공급을 새로운 기반 위에 세웠다.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은 아랍으로 외환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그들의 식민지에 커피 농장을 세웠다.” - 본문 中

 유럽에서 커피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럽의 나라들은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돈이 커피를 수입해 오는 아랍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자신들이 식민 지배 중인 나라에 커피 농장을 세워 자국으로 직접 커피를 공급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커피대신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와는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영국의 차 무역은 사람들이 정당하게도 ‘국가 속의 국가’라 일컬은 동인도 회사의 독점이었다는 것만 지적하자. 이전의 커피 무역은 이에 반해 독립적인 상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양자사이의 경쟁을 우리는 다국적 콘체른(기업결합)과 중소기업 사이의 경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여기서 패배할 것인지는 뻔한 일이다. 동인도 회사의 세력은 사실 영국 시장에서 차를 관철시키고 결국 영국의 미각에 확고히 정착하도록 한 본질적인 요소였다.” - 본문 中

 독립적인 상인들이 이슬람세계로부터 커피를 수입해 짭짤한 이윤을 남기는 것을 본 동인도 회사는 커피와 효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더 싼 차를 수입해 영국에 보급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동인도 회사의 계산은 정확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가격은 더 싸지만 커피와 효능이 비슷한 차에 열광해 커피만큼이나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이는 동인도 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은 인체를 활동적이고 생기 있게 만든다. 그것은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도움이 된다. 짜증을 사라지게 하고 피로를 몰아내고 소화를 도우며 무거운 몸집을 가진 사람들이나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그것은 악몽을 꾸지 않게 하고 두뇌를 가볍게 하며 기억력을 강화시킨다. 그것은 특히 잘 깨어 있게 해 준다. 한 잔을 마시면 충분하고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밤새 일할 수 있다.”

 

 ‘Tea time’인가, ‘Coffee break’인가

 

 1660년의 한 영어 텍스트는 위와 같이 차의 효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차를 통한 휴식이 아니라 커피와 같이 각성을 일으키는 차의 효능이었습니다.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당시의 유럽인들(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차나 커피가 정신을 맑게 만들어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에 차 혹은 커피를 열심히 마셨습니다.

 커피가 이슬람세계로부터 유럽으로 전해졌을 당시 커피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즐기는 일종의 기호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특정세력(종교개혁자들)은 커피에 고정된 의미를 부여해 유럽 전역에 널리 전파시킴으로써 커피는 기호품에서 일상생활을 위한, 정확히 말해 더 많은 노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생필품으로 탈바꿈됐습니다. 이를 간파한 동인도 회사는 이윤추구를 위해 커피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차를 유통시켜 영국인들의 미각을 통제했습니다. 즉 영국인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동인도 회사의 셈법으로 인해 영국인들은 차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Tea time과 Coffee break라는 말이 있습니다. Tea time이란 ‘커피(차)를 통해 휴식을 하고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Coffee break는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뜻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동네 깊숙한 곳까지 카페가 들어섰고 물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흔해진 오늘날. 우리의 커피는 휴식을 위한 기호품인지,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생필품인지. 우리의 커피마시는 시간은 Tea time인지 혹은 Coffee break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광주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젊은 감각의 같은 듯 다른 인테리어(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올만한 인테리어)와 비슷비슷한 메뉴(파스타, 피자, 돈까스, 볶음밥, 퓨전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영국인들에게 차를 마시게 했던 동인도 회사처럼 우리의 미각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식당들의 음식은 많은 부분 식자재 유통 회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이러한 식당들이 선보이는 맛의 영역과 깊이가 그리 넓거나 깊어 보이지 않으니까요.

김태균<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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