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도덕적 감수성’의 빈약함에서 생겨난다

▲ <사진출처=5·18기념재단>
 2014년 4월16일 이후, 광주에서는 4월이 가야 5월이 옵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광주의 5월은 해마다 불쑥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월을 보내야만 5월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즉, 광주에서는 5월에 앞서 4월도 아픈 달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광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진실 규명을 위한 자발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때도, 구한말 항일 의병운동 때도, 4·19혁명 때도 광주는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향’은 광주에 더없이 적합한 수사입니다.

 의리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일. 둘째, 남남끼리 혈족을 맺는 일.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고 타인의 슬픔에 함께 아파했던 광주의 모습은 의리에 담긴 뜻을 충족하고 남습니다. 의향이라는 광주의 정체성을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의리에 담긴 넓은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5·18민주화운동 역시 의리를 숭상하는 광주의 지역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의에 맞서 거센 목소리와 몸짓을 쏟아냈고, 서로를 먹이고 입히며 혈족을 맺었습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이었던 1980년 5월 22일부터 27일까지의 닷새 동안 경찰력이 마비됐음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는 질서가 유지됐고 시민들의 자치공동체가 실현됐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광주 항쟁 자치공동체 실험 성공적”

 

 광주에서 자치공동체의 실현을 목격한 군부세력은 위기감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없어도 한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부세력은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에 극단적인 색깔론을 덧입혀 거칠게 폄하했습니다. 다른 도시들이 광주를 보고 광주처럼 자치공동체를 만들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쯤경, 아버지는 이웃과 함께 금남로에 나갔습니다. 도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아볼 겸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외출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더랍니다. 총탄을 피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아버지 덕분에 저도 세상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를 비롯한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이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처럼 가볍게 금남로에 나선 순진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과 곤봉에 쓰러져 상무관에 누웠습니다.

 늘 과묵한 선비 같았던 아버지는 1986년 당시 민정당사 광주시당(현 자유한국당 광주시당) 앞에서 공장을 운영했는데, 데모를 하다가 전투경찰을 피해 공장으로 숨어든 대학생들을 살뜰히 숨겨주고 촛불을 켜주고 눈 밑에 치약을 발라주셨습니다. 80년 5월에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그렇게 갚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시외에서 손님이 올 때면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손님들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때마다 과묵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망월동 시립 묘지에 잠들어 계십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죽어서라도 5·18민주화운동으로 쓰러져간 영혼들의 옆에 계시려는 ‘나름의 의리 지키기’가 아닐까 혼자서 합리화해 봅니다. 5·18민주화운동 때 스러져간 분들의 아픔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80년 5월 당시 수동적이었던 광주시민들의 죄책감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광주에서 80년 5월을 산 모두에게는 나름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폭력으로 아파봤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 “내가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실베스터가 대꾸했다. “자네 아버지가 자네의 교육을 몽땅 자네 어머니 손에 맡겨두고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네의 발전에 간섭하거나 자네가 어떤 특정한 직업을 택하도록 이끌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자네는 부모님의 간섭을 조금도 받지 않고 자란 것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서로 다른 식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마구 헤집어놓고 간, 잘 차려진 만찬의 찌꺼기일 뿐이거든.

 “저는 교육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하인리히가 대답했다. “만약에 그것이 저희 부모님의 인생이나 감정의 방식이 아니라면, 또는 궁중의 목사이신 저희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모든 관계를 한 조각의 금속이나 수공업 작업처럼 뜯어보려고 하는 냉정하고도 견고한 사고방식을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는 모든 불가해하고 드높은 현상들에 대해서 외경심과 경건한 마음을 지니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성장을 겸손한 극기의 자세로 지켜보시는 것이지요.” - 본문 中

 

 “단 하나 악의 근원, 그건 나약함”

 

 아버지는 제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교육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사진, 다큐멘터리, 신문기사 등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5·18민주화운동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며 5·18민주화운동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광주시민에게 5·18민주화운동은 상처와 아픔이라는 집단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저도 5·18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아프고 분하지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저의 기억은 ‘의리’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다양한 기억을 가지신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처와 아픔이라는 집단기억과 더불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들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5·18민주화운동을 좀 더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노발리스는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노발리스의 본명은 필립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입니다. 노발리스는 그가 지은 필명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노발리스가 죽은 지 일 년 뒤에 출간된 ‘푸른 꽃’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전성기 시절의 중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종교적 배경을 이룬다. 이 작품은 장르상으로는 한 인간의 완성 과정을 다룬 교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발리스는 한 시인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교육은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온갖 경험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경험과 체험의 세계는 다양하게 펼쳐진다. 주인공은 낯선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많은 경험을 쌓고 또 그 경험을 통해 시인으로 성장해간다. - 김재혁(2003) ‘푸른 꽃’ 작품 해설 中

 ‘푸른 꽃’의 주인공 하인리히는 20살이 될 때 까지 집과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순진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를 방문하는 동안 겪은 일은 담은 것이 이 책입니다. 하인리히는 여행을 하며 동행한 상인들과 여행을 하며 만난 이들에게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를 통해 하인리히는 세상을 배우고 지혜와 사랑을 깨닫습니다.

 - “그렇다면 이 우주에서….” 하인리히가 말했다. “공포와 고통, 결핍과 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은 언제인가요?” “이 세상에 단 하나의 힘만 존재하게 되는 날이지. 양심의 힘 말이야. 그리고 자연이 겸손하고 도덕적이 되는 날이지. 이 세상엔 단 하나의 악의 근원이 있어. 그건 바로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나약함이야. 그리고 이 나약함이란 다름 아닌 도덕적 감수성의 빈약을 뜻하는 거야. 또한 자유의 매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해.”

 

 “잘못은, 잘못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 생겨”

 

 “양심이라는 게 뭔지 좀 설명해 주세요.” “내가 그럴 수 있다면 하느님이겠다. 왜냐하면 양심이라는 것은 양심이라는 게 뭔지 이해할 때 비로소 생기거든. 자네는 나한테 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를 납득 가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자신이 직접 관여할 수 없는 것들의 비밀은 더욱 그렇단다. 귀머거리한테 음악을 설명할 수 있겠니?”

 “(중략) 양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진지하게 완수할 때, 무언가 진리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나타나는 거야. 성찰을 통해 하나의 세계상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모든 성향과 솜씨는 양심의 한 현상이요 변형이야. 사실 모든 발전은 우리가 자유라고밖에 달리 부를 수 없는 것에 도달하게 되어 있어. 물론 이 자유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창조적 기반을 지칭하는 거야. 이런 자유는 숙달이라고 할 수 있지. 대가는 자유롭게 힘을 사용해서 자기가 생각하고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그의 예술의 대상들은 그의 것이며, 그의 뜻에 따라야 하지.”

 “그렇지만 그것들은 그를 구속하거나 방해할 수 없어. 그리고 바로 이처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유, 대가다움 또는 장악력이 양심의 본질이요 추진력이야. 바로 이때 성스러운 독특성과 인격의 직접적인 창조 행위가 드러나는 거야. 그리고 대가의 모든 행위는 동시에 드높고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은 세계, 즉 하느님의 말씀의 포고인 거야.” - 본문 中

 노발리스에 따르면 악은 ‘도덕적 감수성’의 빈약함에서 생겨납니다. 여기서 도덕적 감수성이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발리스의 말대로 ‘양심이란 양심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 생기는 것’처럼 잘못이란 잘못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 생깁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이 잘못한지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고,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행간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실제로 자신들이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잘못을 저질로 놓고도 그것이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들에게 양심을 요구하는 것은 ‘소귀에 염불외우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자신도 5·18민주화운동의 피해자라는 망언을 쏟아내는 전두환과 그의 부인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껏 안하무인의 자세로 국민들을 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바꿔 말해 전두환 내외는 도덕적 감성이 부족한 자들이고 노발리스의 말을 빌리자면 ‘악의 근원’인 것입니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악의 근원의 적반하장을 참아내며, 아프고 분한 5월을 보내느라 힘드셨을 시민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김태균<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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