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짧아 아쉽다고 했던 설 명절을 앞두고 이제는 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손끝 마디가 찬바람에 찔리듯 추웠던 그 날 우리를 향해 있는 카메라가 있었고 무엇이든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마이크가 필요했던 날
그리운 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마음 안에 피어난 평등 이라는 이름이 그랬고새롭지 않고 특별하지 않고 매일 매일이 너무나도 똑같아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지루하고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평범함이 그랬습니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마저 짧게 느껴졌지만 그 자리에 모인 그들이 그 자리에 모인 우리가 하고자 했던 얘기는 결국 하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간을 스치는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의 선물꾸러미가 가득했고 간편한 이동을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이 함께였어요.
▲버스 티켓을 쥐고도 승차할 수 없어
모두가 턱이 높은 버스를 너무나도 자연스레 오르고 내렸지만 바퀴달린 휠체어에 앉은 그날의 누군가는 버스티켓을 손에 쥐고도 끝내 승차할 수 없었죠. 그리고 그 높은 버스 안에 오른 누군가는 약속된 출발 시간이 지연 될까 아주 큰 목소리로 걱정을 하기도 했구요.
투쟁, 시위, 농성 생일, 기념일, 명절, 누구에나 있을 수 있는 특별한 날 누구에게나 단 한번 단 하루뿐인 1년 365일 모두 똑같은 데 무엇이 다른가요?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무엇이 달라져 버린 걸까요? 왜 달라야 할까요?
다른 것일 뿐인데 왜 그것이 ‘틀리다’가 되었을까요?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누구인가요?
아무리 진심을 담아 간절하고 절박하게 소리쳐도 스치는 눈길 한번 조차 주지 않던 사람들도 무심히 딱딱하게 바라보며 스쳐가던 다른 사람들도 아무리 거짓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해도 그들에겐 그저 남의 얘기였고 본인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평생 나와는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일이었을테니까요.
스무 살 누구 씨. 서른 살 누구 씨.
무심히 스쳐가는 그들의 눈에 그날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이름도 없고 성별도 없고 내 이름이 무엇이든 내가 남자든 여자든 아무것도 상관없는 그냥 몸이 아파 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그저 장애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르지 않아요…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도 말이에요.
몸이 불편하고 시력이 좋지 않고 그래서 혹시 사람들이 말하는 그 ‘보통’이라는 기준에서 혹시 정말 조금 다른 점이 있더라도 그래도 다르지 않아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끼니를 거르면 배가 고프고 잠을 못자면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속이 상하고 그렇게 혼자 속 끓이다 또 그게 쌓여서 정말 힘들 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공감하고 토닥여줄 내 편이 그리워지고 편하고 좋은 내 사람들이랑 같이 마시는 맥주 한 잔 생각나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땐 울기도 해요.
다르지 않아요. 나도 그래요. 당신도 그렇잖아요. 우리 모두가 다 그래요.
아들, 딸, 형제, 자매, 형, 동생, 언니, 누나 그대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연인인 것처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는 동안 딱 한번 마주치는 스침이라도 좋으니 부디 언제라도 그 때가 된다면 그 때가 온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그 단 한 번에 따뜻함을 담아 주세요.
저의 이름은 은수입니다.
은수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며 늘 제자리걸음인 듯 보여도
손톱만큼 이라도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가고 싶은 고민쟁이 스트레스쟁이 꿈쟁이 그냥 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