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경험하고 느낀다.’는 것은 얇은 커튼으로 가려져있던 공간을 잠시 동안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평소 커튼 사이사이로 보이던 희미한 무언가를 확인하여 그것의 실체유무를 판단 짓고 그에 대한 생각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천을 걷어내고 안에 있던 물체를 보기위해 다가서는 첫 순간에는, 우리는 아직 흐릿하기 만한 물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에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도달했을 때, 마침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추정한 형태와 색감을 매치시켜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 있었는데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희미한 그것을 확인하러 가는 사이, 누군가가 이미 도달해 가져가버렸는지도. 하지만 그 사실은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물체의 유무는 사실 우리가 바랐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이 허상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자 했던 그 자체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이미 또 다른 무언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커튼 말고도 여러 가지 천들이 달린 방들이 혼잡하게 배치되어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천의 재질, 무게에 따라 한때는 그것을 걷어내기 차마 두렵고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하지만 방과 방 사이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지식과 효율적인 행동들을 파악해가며 나이를 먹어간다. 그렇게 몇 개 남지 않은 방들에 다가가고 있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머리위에 부엉이의 깃털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미네르바의 부엉이’ 삶이 주는 ‘지혜’이다.

 지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렇다. 아직 나도 주변 사람도 어려서인지 몰라도 지식이 많은 사람은 두루 보았으나 딱히 지혜를 가진 사람은 본 적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읽어왔던 동화 속에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악의 형태가 아닌 선의 형태로서 어떤 위기나 상황, 사물에 대해 이치를 깨닫고 적절히 행동한다. 이러한 점들을 보아 우리는 옛날부터 흔치않은 이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오랫동안 선망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 나는 지혜를 가진 자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배워가며 그들 곁에 남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 부엉이의 눈을 가지고 그 큰 날개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하나의 세계를 꿰뚫고 다니는듯한 그들과 말이다.
심정효 <수완하나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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