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는 사고, 바로 비피무아이다. 꼭 비피무아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비피무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고가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청와대에 청원을 했다. 다름 아닌 우리 학교 국어선생님이셨다. 제주 관함식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초대장을 보내고 나서 일본이 우리나라에 올 때 ‘욱일기’를 달고 온다고 하였다. 그에 대해 국어선생님께선 분노를 감추지 못하셨다. 일본, 그들이 욱일승천기라고 부르는 욱일기는 아직도 존재한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사용한 것으로, 굉장히 우리나라를 아프게 만든 것이다. 근데 그 어마무시한 국기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월드컵 한일전에도 욱일기는 등장한다.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화협정 이후에도 왜 이러한 욱일기는 등장하는 것인지. 당장 멈춰야 한다.

 일본인들은 그 국기를 디자인이라고 한다. 아직도 그 문양만 보면 치가 떨리고 가슴이 죽도록 아픈 사람이 있건만, 그들은 그것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반성의 기미조차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베총리는 평화협정을 개정하기로 마음먹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가 A급 전범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말이다.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의 욱일기에 대한 인지도 차이이다. 사람들은 욱일기를 잘 모른다. 독일이 히틀러 때 만들어낸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잘 알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국민이 욱일기는 잘 모른다.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잔인했던 일본을 순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해결 방안과 그 문제의 원인을 생각해보니 역사 교과서에 욱일기의 기원이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역사 교과서, 아니 교육과정에 그것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국어선생님의 청원이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현황은 심각하다.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욱일기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 잘못이 굳어지기 전에 우리와 같은 학생 때 바로 잡아야한다. 또 여행에서의 무지도 일어날 수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김치와 함께 사진을 찍는 무지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주장하는 국어선생님의 태도가 너무 멋있고 본받고 싶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실 때 선생님은 일본에 대해 매우 분노하신 상태셨는데 곧 화를 가다듬고 꿋꿋이 욱일기 교육을 주장하셨다. 이건 마치 김유정의, 해학을 통한 일제강점기의 고통 극복의 원리와 매우 비슷했다.

 비피무아의 법칙은 대립관계에서 탄생하지만, 결코 대립을 ‘키우는 것이 아닌 없앤다’는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비피무아에 둘러싸여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비피무아의 의미인 동시에 결과인 것 같다.
장진영<송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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