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동굴 우화와 머릿속의 원으로 이데아를 비유했다. 나는 이데아가 좋지만 ‘시인 추방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의 이데아가 있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 있는 원의 이데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하게 동그란 원이다. 하지만 그 이데아를 표현하려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게 되면 절대 이데아와 같게 그릴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이데아와 똑같은 것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머릿속 이데아보다 현실에 있는 것이 더 온전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도 동굴우화 속 죄수와 같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태어나 태양과 달의 비치는 모습, 아주 조금의 일부가 그것 전체라고 생각하는 어린 아이처럼. 하지만 이데아라는 개념은 완벽하지 않다. 철학자들은 거장 플라톤의 주장을 감히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반론이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플라톤과 사제지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보다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것을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이데아는 완벽하지만 각자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완벽한 이데아는 다르므로 물질은 이데아로 정의내릴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중국여인이 완벽한 미인 이데아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미국 여인, 한국 여인 등 많은 다른 여인이 완벽한 미인 이데아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데아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사실 머릿속 이데아를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설계도만 생각하고 만들지 않으면 현실은 삭막할 것이다. 이 세계의 문명과 문화는 이데아를 실천해서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이데아가 있어야 한다. 이데아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아는 플라톤이 주장해서 위대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론 그저 우리가 매일하는 생각과 상상에 불과하다.
배예은<수완하나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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