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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일방 성쇠기] <5>미래… 도약과 장애
[기획]`10대 기업’ 최전성기 지났지만
`입고 사는 한’ 성장은 지속된다
채정희 goodi@gjdream.com
: 2008-09-10 07:00:00

전국 대도시마다 대형 공장 하나씩은 가동돼 왔으리만큼 방직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그런 때가 있었다.

서울엔 민족자본인 경성방직, 부산엔 조선방직, 인천 동일방직 등이 전방·일신방직과 함께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동력이었다.

“최고 호황기인 70년대를 지나 80년대 중반까지가 섬유산업의 전성기였다”는 데 대체적인 증언이 일치한다.

성장세의 끝자락인 80년대 중반 전국의 섬유노동자는 18만 명에 달했다.

현재 전국 최대 사업장인 금속노조원이 15만 명이니, 당시의 섬유산업의 규모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당시 일신방직과 분리된 상황이었음에도 전방의 종업원만 해도 광주와 인천 공장을 합해 6000여 명에 이르렀다.

전국 10대 기업, 이름 당당하던 시절이었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시행할 당시 주력산업이 섬유였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 엔진은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단일 기업 수출 100억 불을 달성한 최초의 기업이 이때 나왔다. 한일합섬. 197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방향이 전자와 석유·화학 등 중공업으로 옮아가면서 섬유산업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노동자들의 이탈도 본격화됐다. 먼지 풀풀 날리며 솜을 타던 직공들은 차세대 산업의 총아로 불리던, 쾌적한 환경의 전자공장으로 탈출했다.

80년대 후반부터였을게다. 침체의 늪에 빠졌고, 섬유산업은 지금까지 여전히 허우적이다.

정순목 전방 노조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섬유노동자는 1만 8000여 명에 불과하다. 20년 만에 1/10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전방 광주공장의 직원들도 1/10로 감소했다. ‘그 시절’ 3000여 명 북적였던 공장엔 현재 300여 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10대 기업’, 옛 영화가 꿈같을 따름이다. 전국 700위권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섬유산업은 이대로 사그라드는 불꽃일까? “그렇지 않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종사자 대부분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한미 FTA 체결 등 새롭게 열리고 있는 자유시장 질서에 거는 기대가 컸다. 농업 분야는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섬유산업에겐 기회라는 것이다.

“원료인 목화가 100% 수입이니 관세 혜택을 볼 수 있고, 거대 규모의 미국이 완제품 시장으로 열리게 되니 판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김옥진 전방 총무차장의 설명이고, 일신방직 김영식 관리부장도 이에 동의했다.

방직 노동자들은 1/10로 줄었지만, 생산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높은 인건비를 자동화로 해결했다는 것인데, 직공들의 ‘자리’를 효율성이 채우면서 희망의 근거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리하여 섬유산업은 다시 부활의 날갯짓이다. 주력 품목은 ‘특수사’로 불리는 기능성 섬유. 대나무에서 실을 뽑은 죽섬, 건강에 좋다는 은나노 섬유, 삼베에서 뽑아 여름철 까실까실하게 입을 수 있는 제품들이 대표격이다.

“일반면사로 호황을 누리던 시대는 저물었고, 차세대 동력은 이런 기능성 섬유”라는 것이 전방 김옥진 총무차장의 주장이다. 일반면사의 경우 부가가치가 5% 정도라면, 기능성 섬유는 30%에 달할 정도로 효자 품목이다. 가히 면 산업의 ‘미러라 할 만 하다.

기능성 섬유가 활성화되면서 방직공장의 생산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특수사 제품에 대한 주문이 늘면서 ‘소품종 대량생산’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부활의 기운이 감지되자 설비도 계속 느는 추세다.

일신방직은 임동 1공장에 이어 지난해 평동산단에 최첨단 자동화 시설을 갖춘 2공장을 준공, 본격 가동 중이다.

김영식 관리부장은 “모든 공정이 완전 자동화된 세계 최첨단”이라면서 “중국 등 후발국의 낮은 인건비와 가격 경쟁력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첨단 설비로 갖췄다”고 설명했다.

전방도 조만간 평동시대를 연다. 평동2산단에 이미 부지를 매입해 놓은 상태. 내년부터 설비에 들어가, 수 년 내에 가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전방 측의 설명이다.

이 곳 역시 자동화를 발판으로 인건비가 거의 안들어가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는 것이 전방측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전방은 서울 본사를 비롯 영암공장, 천안공장에 이어 담양의 전방군제까지 전국에 사업장을 두고 사세를 키워나가고 있다.

일신방직 역시 서울에 본사를 두고 광주1·2공장과 함께 반월공장, 그리고 홍콩지사를 통해 면산업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방직산업의 부활이 점쳐지는데, 기능성 섬유와 자동화가 대내적 발판이라면 자유시장체제는 대외적 원군인 셈이다.

“옷을 입지 않고 살 수는 없다”는 문명화된 인간의 의식주 관념 역시 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증하는 근거 중 하나다.

초미의 관심사인 임동 일대 공장 이전과 관련해선 양사 모두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전방·일방 성쇠기] <5>미래… 도약과 장애
[전방·일방 성쇠기] <4>분리… 전방과 일방
[전방·일방 성쇠기] <3>직공… 희망과 절망
[전방·일방 성쇠기]<2>종방… 성장과 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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